빈 도시의 가슴에 전화를 건다 / 권천학 전화를 건다 빈 집, 빈 방, 도시의 빈 가슴에 여보세요, 여보세요…… 정좌한 어둠이 진저리를 친다 화들짝 놀라 깬 침묵이 수화기를 노려본다 거미의 파리한 손가락이 뻗어나와 벽과 벽 사이 공허의 모르쓰 부호를 타전해온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 뻐마디를 일으켜 세운 어둠이 싸늘한 바람을 몰고 온다 구석진 한 귀퉁이에 겨우 발붙이고 있는 체온을 딸깍 꺼버린다. 가느다란 신경줄 하나 수화기 옆에 오똑 웅크리고 앉아 오로지 듣고 있다. 침묵의 제 발자국 소리를 공허의 빈 들판에서 우롱, 우롱, 우롱…… 소용돌이치는 죽음 같은 절망 절망 같은 죽음을 쓸고 오는 허무의 바람 소리를 대리석처럼 반들거리는 적막의 물살에 부딪쳐 미끄러지는 벨 소리 빈 집, 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