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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
    2015. 3. 5. 23:30

    아버지의 그늘--신경림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부러진 색시를 업고 돌아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굴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 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삯을 못 받은 광부들한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그들고 어울려 핫바지춤을 추기도 했다.
    빚 받으러 와 사랑방에 죽치고 앉아 내게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화약장수도 있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엾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거울을 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호기 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 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임실군청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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