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

농돌이 2013. 11. 4. 18:50

은행나무 잎이 지네요

아름답습니다   시 한편 올립니다

 

늙은 은행나무의 수좌가 되어

 

천태산 영국사로

늙은 은행나무를 알현하러 갔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예까지 납시었느냐며 사뭇 반기신다

 

이렇게 무성하게 잎을 피우며

천 년이 넘도록 강건하게 사시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말없이 발아래를 가리키신다

은행잎이 수북이 쌓여 있다

굳이 비결을 말하라면

못 들려 줄 이유도 없지

그저 내 몸이 무겁다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한 잎 두 잎 조금씩이나마  

나를 비우는 것뿐이라네

사람들은 내  황금색 잎들이 아름답다고들 하지만

그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  

내가 가야 할 길은 당당 멀었지

나를 비우고 또 비워서

마침내 단 하나의 이파리조차 남아 있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내가 꿈꾸는 아름다움의 끝 자리에 닿게 된다네

혹 자네도 시간 있거든 초겨울에

다시 한 번 이곳에 와 보시게나

내 몸이 품은 눈부신 空에 반한

겨울바람이 엉엉 울고

저 남고개 넘어오던 햇살이 찔끔

오줌을 지리는 걸 보게 될 테니 말일세

내 말 뜻을 알아듣겠는가

말씀을 마치신  은행나무

금세 또 이파리 하나를

가만히 발아래로 떨어뜨린다

 

삶이란 도무지 예측불가한 것

어느새 난

늙은 은행나무의 수좌(首座)가 되어

터덕터덕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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