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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잎이 지네요
아름답습니다 시 한편 올립니다
늙은 은행나무의 수좌가 되어
천태산 영국사로
늙은 은행나무를 알현하러 갔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예까지 납시었느냐며 사뭇 반기신다
이렇게 무성하게 잎을 피우며
천 년이 넘도록 강건하게 사시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말없이 발아래를 가리키신다
은행잎이 수북이 쌓여 있다
굳이 비결을 말하라면
못 들려 줄 이유도 없지
그저 내 몸이 무겁다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한 잎 두 잎 조금씩이나마
나를 비우는 것뿐이라네
사람들은 내 황금색 잎들이 아름답다고들 하지만
그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
내가 가야 할 길은 당당 멀었지
나를 비우고 또 비워서
마침내 단 하나의 이파리조차 남아 있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내가 꿈꾸는 아름다움의 끝 자리에 닿게 된다네
혹 자네도 시간 있거든 초겨울에
다시 한 번 이곳에 와 보시게나
내 몸이 품은 눈부신 空에 반한
겨울바람이 엉엉 울고
저 남고개 넘어오던 햇살이 찔끔
오줌을 지리는 걸 보게 될 테니 말일세
내 말 뜻을 알아듣겠는가
말씀을 마치신 은행나무
금세 또 이파리 하나를
가만히 발아래로 떨어뜨린다
삶이란 도무지 예측불가한 것
어느새 난
늙은 은행나무의 수좌(首座)가 되어
터덕터덕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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