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60

봄날 강변 / 신동호

봄날 강변 / 신동호 세월이 멈춰졌으면 하지 가끔은 멈춰진 세월 속에 풍경처럼 머물렀으면 하지 문득 세상이 생각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을 때일거야 세상에는 생각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꼈을 때일 거야 아마 예전에 미처 감지하지 못해서가 아니야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아름다움을 느끼기엔 너무나 빠른 세월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야 분명 마음은 발걸음보다 항상 뒤처져 걷지만 봄날 강변에 앉아보면 알게 되지 머얼리 기차가 지나갈 때 눈부신 햇살 아래, 오래 전 정지된 세월의 자신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순간 기차는 굴속으로 사라져버리고 강변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자신은 떠나지만 변하지 않는 풍경으로 남아 있을 게야 마음의 지조처럼 여전히 기다릴 게야 오래도록. 지난 6일에 다녀온 한라..

2018.06.21

순백의 한라산 추억들,,,!(1)

한라산 눈을 밟으러 3번을 제주에 갔었습니다 두번은 폭설과 한파로 인한 입산통제로 고생만 질질히 하다가 돌아왔습니다 지난 2월 24일 마지막으로 결행을 했고, 다행히 설산에 발을 디뎠던 추억입니다 한장의 추억을 꺼내어 빙그레 웃어봅니다 낑낑대고 걸어올라와 입구에 섭니다 지난 폭설로 엄청난 모습을 보여줍니다 멋진 모습,,,! 한라산 고사목 / 이생진 한라산 사제비동산 가는 길가에 넋이 나간 고사목枯死木 죽어서도 미래를 사는 고집 살아서 청청했다 죽어서 꼿꼿한 뼈대 마른 주먹엔 무엇을 쥐고 있을까 푸른 생명들 속에서 기죽지 않고 서서 언제 말하려 하는지 살아서 겪은 일 들으려고 노랑나비 흰나비 나와 함께 맴돌고 있는데 내 마음에 새로운 손님이 옵니다 가끔은 이국적인 환경이 그런 느낌을 부릅니다 평화롭고, 자..

2018.03.24

백록담 사진을 바라보며,,,!

내 눈동자 속의 길 / 강윤미 여행 끝에 도착한 여관방 누군가 마지막까지 힘껏 짜다 만 치약 한 번 쓸 만큼만 남겨 놓은 그것을 검지에 묻힌다 어둠이 이 방을 헹구고 갈 때까지 나는 오랫동안 후생의 나를 기다린 것 같다 흑백사진 같은 거울에 스며 있는 수많은 여행자의 몰골 위에 나는 입깁을 불어 강물이라고 쓴다 눈을 깜빡이자 타일 무늬 속으로 황급히 휘돌아가는 기척 벽의 수면 위로 꽃들이 질 줄 모르고 핀다 꽃들이 토해내는 향기를 쫓아 모래사장을 걸어나가면 저녁은 태어나고 수평선에서 겨우 빠져나온 오징어배의 불빛들 한숨 돌리고 또다시 파도를 뜯으러 달려가는 모래알을 따라가면 눈동자에서 시작한 길의 끝을 만난다 노을에 취한 파도였는지 포말에 엉겨붙은 바람이었는지 비릿한 게 그리워 나는 쉴새없이 셔터를 눌러..

2018.03.04

봄길 / 정호승

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땅 위에 모든 것들도 스스로의 많은 이야기를 낳고, 잊어져 간다 혼자의 이야기가 모이는 봄은 합창처럼 아름답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걸어가는 사람이고 싶다,,,!

2018.03.01

너를 위하여 / 김남조

너를 위하여 / 김남조 나의 밤기도는 길고 한가지 말만 되풀이 한다 가만히 눈 뜨는 건 믿을 수 없는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 버리고 못다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숨을 내쉬면서,,, 깊은 숨을 들이쉬면서,,, 세상의 고통과 부정적인 것들을 버렸다 내 상처가 아니라 작은 감정의 부스러기들을,,,! 풍경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돌아간다

2018.02.26

마음의 액자 / 고두현

마음의 액자 / 고두현 멀리 있는 것이 작아 보이고 가까이 있는 것이 커 보이는 원근법의 원리 이미 배웠지만 세상 안팎 두루 재보면 눈에 멀수록 더 가깝고 크게 보이는 경우도 있지요. 오늘처럼 멀리 있는 당신. 어느 날 문득 내게로 오는 것이 돈오돈수(頓梧頓修)의 유리 거울이라면 끊임없이 가 닿기 위해 나를 벗고 비우는 일이 원근보다 더 애달픈 사랑이라는 걸 마음의 액자 속에서 비로소 깨달은 오늘. 어느 길도 가야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여행의 시작이다 --나짐 히드메트 글 중에서 --

2018.02.25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슬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울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

2018.02.24

사랑니 / 고두현

사랑니 / 고두현 슬픔도 오래되면 힘이 되는지 세상 너무 환하고 기다림 속절없어 이제 더는 못 참겠네. 온몸 붉디붉게 애만 타다가 그리운 옷가지들 모두 다 벗고 하얗게 뼈가 되어 그대에게로 가네. 생애 가장 단단한 모습으로 그대 빈 곳 비집고 서면 미나리밭 논둑길 가득 펄럭이던 봄볕 어지러워라. 철마다 잇몸 속에서 가슴 치던 그 슬픔들 오래되면 힘이 되는지 내게 남은 마지막 희망 빛나는 뼈로 솟아 한밤내 그대 안에서 꿈같은 몸살 앓다가 끝내는 뿌리째 사정없이 뽑히리라는 것 내 알지만 햇살 너무 따뜻하고 장다리꽃 저리 눈부셔 이제 더는 말문 못 참고 나 그대에게로 가네 오랜 기다림을 안고, 채우지 못하는 결핍을 지고, 다른 존재로 채우려 떠납니다,,,!

2018.02.23

사랑굿 1 / 김초혜

사랑굿 1 / 김초혜 그대 내게 오지 않음은 만남이 싫어 아니라 떠남을 두려워함인 것을 압니다 나의 눈물이 당신인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감추어 두는 숨은 뜻은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얻을래야 얻을 수 없는 화염 때문임을 압니다 곁에 있는 아픔도 아픔이지만 보내는 아픔이 더 크기에 그립고 사는 사랑의 혹법(酷法)을 압니다 두 마음이 맞비치어 모든 것 되어도 갖고 싶어 갖지 않는 사랑의 보(褓)를 묶을 줄 압니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눈이 내려서 풍경을 만들고,,,! 바람은 그림을 그리고, 지나는 이들에게 잠시, 머무름을 준다.

2018.02.22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따뜻한 동행 / 고정희 해거름녘 쓸쓸한 사람들과 흐르던 따뜻한 강물이 내게로 왔네 봄 눈 파릇파릇한 숲길을 지나 아득한 강물이 내게로 왔네 이십도의 따뜻하고 해맑은 강물과 이십도의 서늘하고 아득한 강물이 서로 겹쳐 흐르며 온누리 껴안으며 삼라의 뜻을 돌아 내게로 왔네 사흘 낮 사흘 밤 잔잔한 강물 속에 어여쁜 숭어떼 미끄럽게 춤추고 부드러운 물미역과 수초 사이에서 적막한 날들의 수문이 열렸네 늦게 뜬 별 둘이 살속에 박혔네 달빛이 내려와 이불로 덮혔네 저물 무렵 머나먼 고향으로 흐르던 따뜻한 강물이 내게, 내게로 왔네 외로운 사람들의 낮과 밤 지나 기나긴 강물이 내게, 내게로 왔네 사십도의 따뜻하고 드맑은 강물 위에 열 두 대의 가야금소리 깃들고 사십도의 서늘하고 아득한 강물 위에 스물 네 대의 바라춤이..

2017.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