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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복궁 걷기
    2021. 5. 15. 15:14

    사적 제117호. 현재 서울에 있는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정궁(正宮)에 해당하는 것으로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북궐(北闕)로도 불린다.

     

    조선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고 가장 먼저 한 일 중의 하나가 경복궁을 만드는 일이었다. 1394년(태조 3) 12월 4일 시작된 이 공사는 이듬해 9월 중요한 전각이 대부분 완공되었다. 궁의 이름은 〈시경 詩經〉에 나오는 왕조의 큰 복을 빈다는 뜻으로 '군자만년개이경복'(君子萬年介爾景福)에서 따왔다. 5대 궁궐 중 가장 먼저 지어졌으나 이곳에 왕들이 머문 기간은 1405년(태종 5) 지어진 일종의 별궁인 창덕궁(昌德宮)에 비해 훨씬 짧다.

     

    세종·문종·단종이 이곳에 주로 기거했으며, 왕자의 난으로 인한 개성천도 기간 동안 빈 궁궐이었다.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경복궁을 기피해 창덕궁에 기거하면서 임금이 살지 않는 궁이 되었다. 1543년(중종 38) 동궁에서 일어난 화재와 1553년(명종 8)에 일어난 내전일곽의 화재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 이듬해 복구되었다. 38년 뒤 임진왜란으로 인해 모든 건물이 불탄 후 270여 년간 폐허상태로 있다가 1865년(고종 2) 대규모 재건공사가 시작되었다.

    1868년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왔으나, 1876년에 일어난 대규모 화재로 다시 창덕궁으로 옮겼다가 1888년 재차 옮기는 등 여러 차례의 피해와 복구가 거듭되었다. 1904년 이곳에 통감부가 들어섰고 1917년 11월에 일어난 창덕궁의 대규모 화재 뒤 이를 복구하기 위해 1918~20년 원래 있던 건물을 해체했다. 또 이곳에서 나온 건축자재의 방매와 국립중앙박물관이었던 조선총독부 건물의 건립 등으로 본래의 모습을 잃었으나 1996년 12월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 등으로 일부가 복구되었다.

     

    경복궁은 뒤에 백악(白岳)과 삼각산(三角山)을 등지고 한성(漢城) 중심 좌우에 6조관아(六曹官衙)가 있는 대로광장에 조영(造營)된 궁궐로서 중국의 고대 궁궐을 만드는 법식인 하늘의 별자리를 본뜬 오성좌 배치를 그대로 따랐다.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을 중심으로 남북축선상에 주요건물을 좌우대칭으로 배치하면서 정전과 편전은 앞부분에, 침전과 후원은 뒷부분에 배치하는 전조후침(前朝後寢)의 격식을 갖추고 있다. 직4각형에 가까운 대지 주위를 담장으로 둘러싸고 동문 건춘문(建春門), 서문 영추문(迎秋門), 남문 광화문(光化門), 북문 신무문(神武門) 등 4개의 문을 만들었다.

    궁궐 안은 정문인 광화문으로부터 홍례문(弘禮門)과 금천(禁川)을 가로지른 영제교(永齊橋)와 근정전을 둘러싼 회랑의 정문인 근정문과 정사를 보던 사정전 뒤의 향오문(嚮五門)을 일직선 상에 배치했다. 이 사이의 공간은 나랏일을 보고 의식을 행하는 업무공간이다.

     

    향오문 뒤쪽에는 침전과 궁궐 내에 필요한 제반시설이 자리한 영역인 후원이 자리잡고 있다. 광화문과 향오문 사이에는 근정문을 경계로 다시 2개의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이는 중국에서 궁궐을 구성하는 방법인 삼문삼조(三門三朝)의 구성법을 따른 것으로 2단의 월대 위에 자리한 중층의 근정전과 이를 둘러싼 회랑을 중심으로 한 이곳은 치조(治朝)에 해당된다. 주로 신하들의 조례를 받던 곳으로 바닥에는 넓다란 박석을 깔고 좌우대칭을 이루어 보다 강한 권위를 보여준다.

    광화문과 근정문 사이의 공간은 외조(外朝)에 해당된다.

     

    침전으로 통하는 노문(路門)인 향오문 뒤에는 왕의 침전인 강녕전(康寧殿)과 왕후의 침전인 교태전(交泰殿)을 비롯해 그 동쪽에 왕대비가 살던 자경전(慈慶殿) 등 많은 침전들이 있었다. 이 건물들은 1918~20년 사이에 해체되어 창덕궁의 희정전(熙政殿)과 대조전(大造殿) 등을 보수하는 데 건축자재로 사용되고 일부는 일반인에게 판매되기도 하는 등 대부분 없어졌다. 현재는 자경전과 교태전 뒤뜰의 아미산(峨嵋山)과 벽돌로 쌓은 굴뚝만이 남아 있다. 이곳에 자리한 많은 보물급 탑들은 조선의 정기를 억압하려는 일본인들에 의해 해체되어 옮겨진 것으로, 현재는 이들을 다른 장소로 옮기고 옛 모습을 되찾고자 복원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근정전(국보 제223호), 경회루(국보 제224호), 자경전(보물 제809호), 근정문 및 행각(보물 제812호), 사정전, 천추전, 수정전, 집경당, 함화당, 재수각, 향원정, 집옥재, 협길당 등의 건물과 경천사10층석탑(국보 제86호)을 비롯하여 일제강점기에 옮겨놓은 많은 국보·보물급 석조문화재가 있다.

    조선시대의 궁궐 중 으뜸인 곳으로 다른 궁궐에 비해 전체모습이 정연한 비례체계를 갖추고 있어서 궁궐건축의 배치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출처 : 다음백과)

    월대의 주위를 둘러싼 회랑은 홍례문의 좌우에서 시작해 향오문의 좌우로 연결되면서 근정문과 사정문의 좌우에도 이어져 직사각형의 회랑은 모두 3개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근정전의 좌우 회랑에는 동쪽에 융문루, 서쪽에 융무루, 그 북쪽에 동서행각문인 계인문과 협의문을 두었다.

     

    근정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문루인 근정문의 좌우에 일화문과 월화문을 두어 권위성을 보여준다. 앞면 5칸, 옆면 5칸의 팔작지붕으로 아래층의 고주가 위층의 변주가 되는 구조이며, 창방·평방 위에 놓인 다포계의 공포는 외삼출목·내사출목으로 기둥머리마다 직각방향으로 튀어나온 안초공을 두었다. 공포의 전체조형은 판재화하는 조선 후기 다포계 건물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천장은 대들보 윗부분부터 우물천장으로 천장 중앙에는 다포계의 천개를 설치하고, 개판에 운룡을 부조했다. 팔작지붕의 지붕마루는 모두 양성을 했고, 용마루 양끝에는 취두를, 추녀마루 위에는 용두와 잡상을 올려놓았고, 사래 끝에는 토수를 달아 위엄을 더했다. 조선시대 궁궐의 정전 중에서 가장 높고 규모가 크며, 조선 후기 다포계 건축의 특징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출처 : 다음백과)

     

    처음에는 경복궁의 서북쪽에 연못을 파고 작은 규모로 지었던 것을 1412년(태종 12) 공조판서 박자청(朴子靑)에게 명해 서쪽으로 옮겨 큰 연못을 파고 4각형의 인공섬 위에 더 크게 세웠다. 이때 경회루로 이름지었고, 파낸 흙으로는 침전 뒤편에 아미산을 만들었다. 1429년(세종 11) 중수되었고, 1475년(성종 6) 다시 고칠 때 48개의 석주에 구름 속에서 노니는 용을 조각해 조선 3대 장관의 하나로 알려지게 되었다.

     

    1505년(연산군 11)에는 연못 서쪽에 만세산을 만들었다. 1592년(선조 25) 한양의 백성들에 의해 전부 불타버렸다가 1865년(고종 2) 경복궁 중건공사 때 다시 짓기 시작해 1867년 완공되었다. 앞면 7칸, 옆면 5칸의 중층(重層) 건물로 익공계 양식이며, 팔작지붕인 이 건물은 장대석으로 축조된 기단 위에 서 있다. 아래층은 외주방형과 내주원형으로 된 48개의 민흘림석주가 상층목조부분을 지탱하고 있으며, 바닥에는 방전을 깔았고, 우물천장을 아름답게 단청했다.

     

    경회루가 갖는 건축적 특징은 평면구조·칸수·기둥수·부재길이 및 창의 수 등에 〈주역〉의 이론을 적용해 신선의 세계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1865년 정학순이 쓴 〈경회루서〉에 건물의 세부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경회루는 기능의 완전성과 독립주에 의한 아름다운 비례의 건축미를 자랑하며, 더욱이 주변 산봉과 서로 어울려 연못에 반영된 절묘한 경관은 누각 건축의 백미이다 (출처 : 다음백과)

     

    커피 한 잔 마시며 감상합니다

    가을에 오면 환상적일 듯 합니다

    약속을 남깁니다

    몇 년만에 짬을 내서 잠시 걸었습니다

    멋진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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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곳에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