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 15

정선 동강에 가고싶어요

처음 가는 길 / 도종환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두려워 마라 두려워했지만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사과는 다 익었을까요? 그냥 걷고 싶습니다

2025.09.26

누구든 떠나 갈 때는/류시화

누구든 떠나 갈 때는/류시화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날이 흐린 날을 피해서 가자. 봄이 아니더라도 저 빛 눈부셔 하며 가자. 누구든 떠나갈 때는 우리 함께 부르던 노래. 우리 나누었던 말 강에 버리고 가자. 그 말과 노래 세상을 적시도록. 때로 용서하지 못하고 작별의 말조차 잊은 채로. 우리는 떠나왔네 한번 떠나온 길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네.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나무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가자. 지는 해 노을 속에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잊으며 가자. 금북정맥에 자동차를 타고 산 정상에 갈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충남 홍성 백월산,,,, 멀리 간월도까지 조망됩니다. 선선한 바람과 붉은 노을은 마음을 샌티하게 합니다, 노을!이 시간, 어둠이 내리는 지금,,..

2025.09.22

김장배추가 커가면서 가을로 달려갑니다

가을편지 / 노향림​안녕하세요? 가을입니다.발끝까지 풀려버려허한빛으로 흩날리고 있군요.​발 밑에흔적처럼 남은물이나 쓸쓸함.​기댈 곳 없는 나는 재채기를 쏟아냅니다.그동안 기대던 가난한 식구와낡은 가구와 해골 같은 한편의 시를 버리고등언저리를 모두 비어놓았습니다.아무 한 일 없이, 누구도 만난 일 없이가을과 나는 한 몸이어서다 해진 하늘, 마른 햇볕을 자꾸 쏟아냅니다.스물스물 빠져나가던 가을은다시 무엇이 되어 나와 함께누렇게 시들어가고 있는지어디 들판에 흩어져 있는지선천성 약질인 폐를 부풀리는 나무 곁에함께 누워있는지두리번댑니다.두리번대도 온통 가을뿐이예요.씌어질 때 씌어지더라도씌어지지 않는 단 한 줄의우리 고통, 안녕!배추를 심고 10일-15일에 1차 비료를 주었습니다. 덥고, 비가 넘 내려서 걱정했습..

2025.09.21

가을의 기도 / 이해인

가을의 기도 / 이해인 가을이여 어서 오세요 가을 가을 하고 부르는 동안 나는 금방 흰 구름을 닮은 가을의 시인이 되어 기도의 말을 마음속에 적어봅니다 가을엔 나의 손길이 보이지 않는 바람을 잡아 그리움의 기도로 키우며 노래하길 원합니다 하루하루를 늘 기도로 시작하고 세상 만물을 위해 기도를 멈추지 않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가을엔 나의 발길이 산길을 걷는 수행자처럼 좀 더 성실하고 부지런해지길 원합니다 선과 진리의 길을 찾아 끝까지 인내하며 걸어가는 가을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 가을엔 나의 언어가 깊은 샘에서 길어 올린 물처럼 맑고 담백하고 겸손하길 원합니다 ​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맑고 고운 말씨로 기쁨 전하는 가을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삶이 그냥 흘..

2025.09.18

기도 /정채봉

기도 /정채봉​쫓기는 듯이 살고 있는한심한 나를 살피소서​늘 바쁜 걸음을 천천히 걷게 하시며추녀 끝의 풍경 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거미의 그물 짜는 마무리도 지켜보게 하소서​꾹 다문 입술 위에어린 날에 불렀던동요를 얹어 주시고​굳어있는 얼굴에는 소슬바람에도 어우러지는풀밭같은 부드러움을 허락하소서​책 한 구절이 좋아한참을 하늘을 우러르게 하시고차 한 잔에도 혀의 오랜 사색을 허락하소서​돌틈에서 피어난민들레꽃 한송이에도 마음이 가게 하시고기왓장의 이끼 한낱에서도 배움을 얻게 하소서​길 위에 길이 있다면,,,, 초여름의 천지의 추억은 치유와 아름다움이었다

2025.09.13

모산재

산안개 / 류시화​나에게 길고 긴 머리카락이 있다면 저 산안개처럼넉넉히 풀어 헤쳐당신을 감싸리​나무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나무는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내 집 뒤에나무가 하나 있었다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비를 가려주고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 때그 바람으로 숨으로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 주었다​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물속에는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하늘에는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그리고 내 안에는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내 안에 있는 이여내 ..

2025.09.11

그대에게 가고 싶다 / 안도현

그대에게 가고 싶다 / 안도현그대에게 가고 싶다해 뜨는 아침에는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그대에게 가고 싶다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밤새 퍼부어대던 눈발이 그치고오늘은 하늘도 맨처음인 듯 열리는 날나도 금방 헹구어낸 햇살이 되어그대에게 가고 싶다그대 창가에 오랜만에 볕이 들거든긴 밤 어둠 속에서 캄캄하게 띄워 보낸내 그리움으로 여겨다오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그리움으로 하나로 무잔무장가슴이 타는 사람 아니냐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새날이 밝아오고진정 내가 그대 가까이 다가서는 만큼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하나되어 우리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그날이 온다면봄이 올 때 까지는 저 들에 쌓인 눈이우리를 덮어줄 따스한 이불이라는 것도나는 잊지 않으리사랑이란또 다른 ..

2025.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