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빨간색 머플러로 따스함을 두르고
노란색 털 장갑엔 두근거림을 쥐고서
아직도 가을 색이 남아있는
작은 공원이면 좋겠다.
내가 먼저 갈께
네가 오면 앉을 벤치에
하나하나 쌓이는 눈들은
파란 우산 위에다 불러모으고
발자국 두길 쭉 내면서
쉽게 찾아오게 할거야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온 세상이 우리 둘만의 세계가 되어
나의 소중한 고백이
하얀 입김에 예쁘게 싸여
분홍빛 너의 가슴에선
감동의 물결이 되고
나를 바라보는
너의 맑은 두 눈 속에
소망하던 그날의 모습으로
내 모습이 자리하면
우리들의 약속은
소복소복 쌓이는 사랑일 거야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안도현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 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첫눈 / 이정하
아무도 없는 뒤를
자꾸만 쳐다보는 것은
혹시나 네가 거기 서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너는 아무데도 없었다.
낙엽이 질 때쯤
나는 너를 잊고 있었다.
색 바랜 사진처럼
까맣게 너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첫눈이 내리는 지금,
소복소복 내리는 눈처럼
너의 생각이 싸아하니
떠오르는 것은 어쩐 일일까.
그토록 못 잊어 하다가
거짓말처럼 너를 잊고 있었는데
첫눈이 내린 지금,
자꾸만 휑하니 비어 오는
내 마음에 함박눈이 쌓이듯
네가 쌓이고 있었다.
계절은 또 움직이고, 변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의 추억과 사랑은 ,
더욱
변함없이 존재하며,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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