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새풀 / 도종환
당신이 떠나실 때
내 가슴을 덮었던 저녁 하늘
당신이 떠나신 뒤내 가슴에 쌓이는 흙 한 삽
떠나간 마음들은이런 저녁 어디에 깃듭니까
떠도는 넋처럼 가~으내자늑자늑 흔들리는 억새풀
( 오서산 억새풀 현황 2017,09,03)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 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날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중에서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벚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되돌아 온다
가을이니까,,,,!
'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북정맥, 백월산,,,! (0) 2017.09.12 귀가 / 도종환 (0) 2017.09.06 강릉 부채길을 걸으며 (2) 2017.08.30 가을에는/최영미 (0) 2017.08.29 안개꽃 / 정호승 (20) 2017.08.25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