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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을 보며 / 이해인
기도가 잘 안 되는
여름 오후
수국이 가득한 꽃밭에서
더위를 식히네
꽃잎마다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흐르고
잎새마다
물 흐르는 소리
각박한 세상에도
서로 가까이 손 내밀며
원을 이루어 하나 되는 꽃
혼자서 여름을 앓던
내 안에도 오늘은
푸르디푸른
한 다발의 희망이 피네
수국처럼 둥근 웃음
내 이웃들의 웃음이
꽃무더기로 쏟아지네여름일기 1 / 이해인
여름엔
햇볕에 춤추는 하얀 빨래처럼
깨끗한 기쁨을 맛보고 싶다.
영혼의 속까지 태울 듯한 태양아래
나를 빨아 널고 싶다.
여름엔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향기로운 땀을 흘리고 싶다.
방울마저도 노래가 될 수 있도록
뜨겁게 살고 싶다.
여름엔
꼭 한번 바다에 가고 싶다.
바다에 가서
오랜 세월 파도에 시달려온
섬 이야기를 듣고 싶다.
침묵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그에게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오고 싶다.
여름일기 2 / 이해인
오늘 아침
내 마음의 밭에는
밤새 봉오리로 맺혀있던
한 마디의 시어가
노란 쑥갓꽃으로 피어 있습니다.
비와 햇볕이 동시에 고마워서
자주 하늘을 보는 여름
잘 익은 수박을 쪼개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 초록의 기쁨이여
우리가 사는 지구 위에도
수박처럼 둥글고 시원한
자유와 평화 가득한 여름이면 좋겠습니다.
오는 아침 나는 다림질한 흰 옷에
물을 뿌리며 생각합니다.
우울과 나태로 풀기없던 나의 일상을
희망으로 풀먹여 다림질해야겠음을
지금쯤 바쁜 일터로 향하는
나의 이웃을 위해
한 송이의 기도를 꽃피워야겠음을...
여름일기 3 / 이해인
아무리 더워도
덥다고
불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차라리
땀을 많이 흘리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일하고 사랑하고
인내하고 용서하며
해 아래 피어나는
삶의 기쁨속에
여름을 더욱 사랑하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여름일기 4 / 이해인
떠오르는 해를 보고
멀리서도 인사하니
세상과 사람들이
더 가까이
웃으며 걸어옵니다.
이왕이면
붉게 뜨겁게
살아야 한다고
어둡고 차갑고
미지근한 삶은
죄가 된다고
고요히 일러주는 나의 해님
아아,
나의 대답은
말 보다 먼저 또 오르는
감탄사일 뿐
둥근 해를 닮은
사랑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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