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 항아리처럼 / 이향아

농돌이 2020. 4. 2. 17:51

비운 항아리처럼 / 이향아

 

기적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퍼낸 물만큼 물은 다시 고이고

달려온 그만큼 앞길이 트여

멀고 먼 지축의 끝간데에서

깨어나듯 천천히 동이 튼다면

 

날마다 다시 사는 연습입니다

연습하여도 연습하여도

새로 밀리는 어둠이 있어

나는 여전히 낯선 가두에

길을 묻는 미아처럼 서 있곤 했습니다

 

눈을 감고 살기를 복습하여서

꿈을 위해 비워둔 항아리처럼

꿈도 비워 깊어진 항아리처럼

기적보다 눈부시게 돌아오기를

옷깃 여며여며 기다리겠습니다.

 

지나본 사람은 안다.

올 봄에는 삶의 무게로 포기하지 말자

 

그리고,

 

오래오래 남겨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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