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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꽃 단상-이해인-
    2013. 12. 28. 16:14

    눈꽃단상 - 이해인 -
    1.
    차갑고도 따스하게
    송이송이 시(詩)가 되어 내리는 눈
    눈나라의 흰 평화는 눈이 부셔라

    털어내면 그뿐
    다신 달라붙지 않는
    깨끗한 자유로움

    가볍게 쌓여서
    조용히 이루어내는
    무게와 깊이

    하얀 고집을 꺽고
    끝내는 녹아버릴 줄도 아는
    온유함이여

    나도 그런 사랑을 해야겠네
    그대가 하얀 눈사람으로
    나를 기다리는 눈나라에서
    하얗게 피어날 줄 밖에 모르는
    눈꽃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순결한 사랑을 해야겠네

    2.
    평생을 오들오들
    떨기만 해서 가여웠던
    해 묵은 그리움도
    포근히 눈밭에 눕혀놓고
    하늘을 보고 싶네

    어느날 내가
    지상의 모든 것과 작별하는 날도
    눈이 내리면 좋으리

    하얀 눈 속에 길게 누워
    오래도록 사랑했던
    신(神)과 이웃을 위해
    이기심의 짠 맛은 다 빠진
    맑고 투명한 물이 되어 흐를까

    녹지 않는 꿈들일랑 얼음으로 남기고
    누워서도 잠못드는
    하얀 침묵으로 깨어 있을까

    3.
    첫눈 위에
    첫 그리움으로
    내가 써보는 네 이름

    맑고 순한 눈빛의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서 기침하며
    나를 내려다본다

    자꾸 쌓이는 눈 속에
    네 이름은 고이 묻히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무수히 피어나는 눈꽃 속에

    나 혼자 감당 못할
    사랑의 말들은
    사랑의 말들은
    내 가슴 속으로 녹아흐르고
    나는 그대로
    하얀 눈물이 되려는데

    누구에게도 말 못할
    한 방울의 피와 같은 아픔도
    눈밭에 다 쏟아놓고 가라

    부리 고운 저 분홍가슴의 새는
    자꾸 나를 재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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