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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흐린 가을비 - 류근 시인산 2014. 1. 20. 15:30
어떤 흐린 가을 비/ 유근 시인
이제 내 슬픔은 삼류다
흐린 비 온다
자주 먼 별을 찾아 떠돌던
내 노래 세상에 없다
한때 잘못든 길이 있었을 뿐.
붉은 간판 아래로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같은
추억이 지나간다
이마를 가린 나무들
몸매를 다 드러내며 젖고
늙은 여인은 술병을 내려 놓는다
바라보는 순간
비로소 슬픔의 자세를 보여주는
나무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숙이고 술을 마신다
모든 슬픔은 함부로 눈을 마주치는 순간
삼류가 된다
가을이 너무 긴 나라
여기선 꽃피는 일조차 고단하고
저물어 눕고 싶을땐 꼭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잎사귀를 허물면서 나는
오래전에 죽은 별자리들의 안부를 생각한다
흐린 비 온다
젖은 불빛들이 길을 나선다
아무도 듣지 않는 내노래 술집 쪽으로 가고
추억 쪽에서만 비로소 따뜻해지는
내 슬픈 잎사귀 또 비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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