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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의 힘 / 류근
    2017. 12. 22. 21:56

    가족의 힘 / 류근

    애인에게 버림받고 돌아온 밤에

    아내를 부등켜 안고 엉엉 운다 아내는 속 깊은 보호자답게

    모든 걸 안다는 듯 등 두들기며 내 울음을 다 들어주고

    세상에 좋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세월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따뜻한 위로를 잊지 않는다

    나는 더 용기를 내서 울고

    아내는 술상을 봐 주며 내게 응원의 술잔을 건넨다

    이 모처럼 화목한 풍경에 잔뜩 고무된 어린 것들조차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노래와 율동을 아끼지 않고

    나는 애인에게 버림 받은 것이 다시 서러워

    밤 늦도록 울음에 겨워 술잔을 높이 드는 것이다

    다시 새로운 연애에 대한 희망을 갖자고

    술병을 세우며 굳게 다짐해보는 것이다 ​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 류근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친구여 나는 시가 오지 않는 강의실에서
    당대의 승차권을 기다리다 세월 버리고
    더러는 술집과 실패한 사랑 사이에서
    몸도 미래도 조금은 버렸다 비 내리는 밤
    당나귀처럼 돌아와 엎드린 슬픔 뒤에는
    버림받은 한 시대의 종교가 보이고
    안 보이는 어둠 밖의 세월은 여전히 안 보인다
    왼쪽 눈이 본 것을 오른쪽 눈으로 범해 버리는
    붕어들처럼 안 보이는 세월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나는 무서운 은둔에 좀먹고
    고통을 고통이라 발음하게 될까 봐
    고통스럽다 그러나 친구여 경건한 고통은 어느
    노여운 채찍 아래서든 굳은 희망을 낳는 법
    우리 너무 빠르게 그런 복음들을 잊고 살았다
    이미 흘러가 버린 간이역에서
    휴지와 생리대를 버리는 여인들처럼
    거짓 사랑과 성급한 갈망으로 한 시절 병들었다
    그러나 보라, 우리가 버림받는 곳은 우리들의
    욕망에서일 뿐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고통으로 능히 한 생애의 기쁨을 삼는다는 것을
    이발소 주인은 저녁마다
    이 빠진 빗을 버리는 일로 새날을 준비하고
    우리 캄캄한 벌판에서 하인의 언어로
    거짓 증거와 발 빠른 변절을 꿈꾸고 있을 때 친구여
    가을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살아있는 나무만이 잎사귀를 버린다

     

     

    폭설 / 류근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
    온밤 내 욕설처럼 눈이 내린다


    온 길도 간 길도 없이
    깊은 눈발 속으로 지워진 사람
    떠돌다 온 발자국마다 하얗게 피가 맺혀서
    이제는 기억조차 먼 빛으로 발이 묶인다
    내게로 오는 모든 길이 문을 닫는다

    귀를 막으면 종소리 같은
    결별의 예감 한 잎
    살아서 바라보지 못할 푸른 눈시울
    살아서 지은 무덤 위에
    내 이름 위에
    아니 아니, 아프게 눈이 내린다
    참았던 뉘우침처럼 눈이 내린다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
    사나흘 눈 감고 젖은 눈이 내린다

    어릴적이나 지금이나 눈이 내리면 좋다

    짙은 새벽,

    집을 나선다.

    나에게 묻는다.

    어디가?

     

    소복한 눈은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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