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 시 14

길에 관한 명상 / 이외수

길에 관한 명상 / 이외수 길은 떠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길을 만들기 이전에는 모든 공간이 길이었다. 인간은 길을 만들고 자신들이 만든 길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길이 아니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인간은 하나의 길이다. 하나의 사물도 하나의 길이다. 선사들은 묻는다. 어디로 가십니까 어디서 오십니까 그러나 대답할 수 있는 자들은 흔치 않다. 때로 인간은 자신이 실종되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길을 간다. 인간은 대개 길을 가면서 동반자가 있기를 소망한다. 어떤 인간은 동반자의 짐을 자신이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어떤 인간은 자신의 짐을 동반자가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길을 가는 데 가장 불편한 장애물은..

2020.05.20

비 오는 날 달맞이꽃에게 / 이외수

비 오는 날 달맞이꽃에게 / 이외수 이 세상 슬픈 작별(作別)들은 모두 저문 강에 흐르는 물소리가 되더라 머리 풀고 흐느끼는 갈대밭이 되더라 해체(解體)되는 시간 저편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시어(詩語)들은 무상한 실삼나무 숲이 되어 자라오르고 목메이던 노래도 지금쯤 젖은 채로 떠돌다 바다에 닿았으리.. 작별(作別) 끝에 비로소 알게 되더라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노래가 되지 않고 더러는 회색(灰色) 하늘에 머물러서 울음이 되더라 범람(氾濫)하는 울음이 되더라 내 영혼(靈魂)을 허물더라. 〔 달맞이꽃 〕 남아메리카 칠레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며 물가·길가·빈터에서 자란다. 굵고 곧은 뿌리에서 1개 또는 여러 개의 줄기가 나와 곧게 서며 높이가 50∼90cm이다. 전체에 짧은 털이 난다. 잎은 어긋나고 줄 모양의..

2017.08.20

살아간다는 것은 / 이외수

살아간다는 것은 / 이외수 살아간다는 것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 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 하루에 한 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 나는 시린 무릎 감싸 안으며 나즈막히 그대 이름 부른다 살아간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 ( 홍성 하리포구의 밤)

2017.07.30

여름 엽서 / 이외수

여름 엽서 / 이외수 오늘같은 날은 문득 사는 일이 별스럽지 않구나 우리는 까닭도 없이 싸우고만 살아왔네 그 동안 하늘 가득 별들이 깔리고 물소리 저만 혼자 자욱한 밤 깊이 생각지 않아도 나는 외롭거니 그믐밤에는 더욱 외롭거니 우리가 비록 물 마른 개울 가에 달맞이꽃으로 혼자 피어도 사실은 혼자이지 않았음을 오늘같은 날은 알겠구나 낮잠에서 깨어나 그대 엽서 한 장을 나는 읽노라 사랑이란 저울로도 자로도 잴 수 없는 손바닥 만한 엽서 한 장 그 속에 보고 싶다는 말 한 마디 말 한 마디 만으로도 내 뼛 속 가득 떠오르는 해 (천리포수목원에서,,,,)

2017.07.30

점등인의 노래/이외수

점등인의 노래/이외수 이 하룻밤을 살고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헤어진 사람들은 다시 돌아와 이 등불 가에서 만나게 하라 바람 부는 눈발을 홀로 걸어와 회한만 삽질하던 부질없는 생애여 그래도 그리운 사람 하나 있었더라 밤이면 잠결마다 찾아와 쓰라리게 보고 싶던 그대 살 속 깊이 박히는 사금파리도 지나간 한 생애 모진 흔적도 이제는 용서하며 지우게 하라 (천리포수목원에서,,,!)

2017.07.24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 두고 / 이외수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 두고 / 이외수 살아 간다는 것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 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 하루에 한 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 나는 시린 무릎 감싸 안으며 나지막히 그대 이름을 부른다 살아 간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

2016.04.21

여름엽서/ 이외수

여름엽서/ 이외수 오늘 같은 날은 문득 사는 일이 별스럽지 않구나 우리는 까닭도 없이 싸우고만 살아왔네 그 동안 하늘 가득 별들이 깔리고 물소리 저만 혼자 자욱한 밤 깊이 생각지 않아도 나는 외롭거니 그믐밤에도 더욱 외롭거니 우리가 비록 물 마른 개울가에 달맞이꽃으로 혼자 피어도 사실은 혼자이지 않았음을 오늘같은 날은 알겠구나 낮잠에서 깨어나 그대엽서 한 장을 나는 읽노라 사랑이란 저울로도 자로도 잴 수 없는 손바닥만한 엽서 한 장 그 속에 보고싶다는 말 한마디 말 한마디만으로도 내 뼛속 가득 떠오르는 해

2015.06.15

동백의 변화

흐린 세상 건너기 / 이외수 비는 예감을 동반한다. 오늘쯤은 그대를 거리에서라도 우연히 만날는지 모른다는 예감.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엽서 한 장쯤은 받을지 모른다는 예감. 그리운 사람은 그리워하기 때문에 더욱 그리워진다는 사실을 비는 알게 한다. 이것은 낭만이 아니라 아픔이다. 얼어서 건조된 동백 지난 겨울에 같은 나무에서 핀 동백 다시 바람이 일고 추워지네요! 꽃 피는 봄이 기다려집니다 【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을 두려워 하라 】

2015.02.08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 이외수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 이외수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 부는 쪽으로 흔들리나니 꽃 피는 날이 있다면 어찌 꽃 지는 날이 없으랴 온 세상을 뒤집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밤에도 소망은 하늘로 가지를 뻗어 달빛을 건지리라 더러는 인생에도 겨울이 찾아와 일기장 갈피마다 눈이 내리고 참담한 사랑마저 소식이 두절되더라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침묵으로 침묵으로 깊은 강을 건너가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2015.02.07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이외수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이외수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서늘한 기운에 옷깃을 여미며 고즈넉한 찻집에 앉아 화려하지 않은 코스모스처럼 풋풋한 가을향기가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 그립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 한 잔을 마주하며 말없이 눈빚만 마주보아도 행복의 미소가 절로 샘솟는 사람 가을날 맑은 하늘빛처럼 그윽한 향기가 전해지는 사람이 그립다 찻잔 속에 향기가 녹아들어 그윽한 향기를 오래도록 느끼고 싶은 사람 가을엔 그런 사람이 그리워진다 산등성이의 은빛 억새처럼 초라하지 않으면서 기품이 있는 겉보다는 속이 아름다운 사람 가을에 억새처럼 출렁이는 은빛 향기를 가슴에 품어 보련다 행복한 아침 여세요!!!

농부이야기 2014.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