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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에서 / 최영미삶 2016. 6. 3. 22:21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그대를 위한 겨울 기도 / 이효녕
차가운 바람결에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의 가난한 작은 마음을 위해
하얀 눈으로 물들여
곱게 빈 여백 채워주소서
마지막 남아 흔들리는 갈대밭
새들의 빈 둥지마다
가득 채워진 마음
얼지 않는 따스한 집 한 채
흩어진 내 가슴에 지어
모두 넉넉한 마음 안아
가난한 모두가 그 안에
편안하게 들게 하소서
날은 추워도 어둠 속에서
별들이 깜박이며 빛을 냅니다
별들이 있어 춥지 않은 하늘
먼 뭇별 하나 따서 모두의 가슴에
담아두고 등불이게 하소서
빈자리는 그리움 채워주어
사랑할 수 있는
따스한 겨울이게 하소서
가난한 내 삶의 한 고비
지금은 모두 쫓겨나
오늘은 비록 텅 빈 가슴이지만
마음마다 하얀 눈을 내려주어
눈빛 보다 맑은 마음 지녀
겨울의 꿈으로 오래 지니고 살도록
모든 고통을 덮어 주소서
혼자 길들일 수 없는
가슴앓이 하던 지난 밤
밖에 차가운 바람이
아픔의 병이 되더라도
눈 속에 작은 들꽃으로 피어내
외로운 시간을 넘으며 바라보게 하소서
그리고 사랑은 오직 하나이게 하소서
이 겨울은 모든 이에게
눈길 위에 따뜻한 발자국 남겨
그리움으로 남게 하소서
조금도 시들지 않는
사랑의 자국 남게 하소서...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 최영미
너의 인생에도
한번쯤
휑한 바람이 불었겠지
바람에 갈대숲이 누울 때처럼
먹구름에 달무리질 때처럼
남자가 여자를 지나간 자리처럼
시리고 아픈 흔적을 남겼을까
너의 몸 골목골목
너의 뼈 굽이굽이
상처가 호수처럼 피어 있을까
너의 젊은 이마에도
언젠가
노을이 꽃잎처럼 스러지겠지
그러면 그때 그대와 나
골목골목 굽이굽이
상처를 섞고 흔적을 비벼
너의 심장 가장 깊숙한 곳으로
헤엄치고프다, 사랑하고프다정신없이 모임에 가서
부산하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소주 몇 잔을 걸친 친구의
깊은 목소리를 들어주고
책상에 앉았습니다
망종을 바라보며
내 마음 속에 나를 일으켜 봅니다
나에게 질문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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