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시(所願詩) /이어령 벼랑 끝에서 새해를 맞습니다. 덕담 대신 날개를 주소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까. 험난한 기아의 고개에서도 부모의 손을 뿌리친 적 없고 아무리 위험한 전란의 들판이라도 등에 업은 자식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앉아 있을 때 걷고 그들이 걸으면 우리는 뛰었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와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눈앞인데 그냥 추락할 수는 없습니다. 벼랑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다가 북한이 핵을 만들어도 놀라지 않고, 수출액이 5000억 달러를 넘어서도 웃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습니까? 거짓 선지자들을 믿은 죄입니까? 남의 눈치 보다 길을 잘못 든 탓입니까? 정치의 기둥이 조금만 더 기울어도, 시장경제의 지붕에 구멍 하나만 더 나도, 법과 안보의 울타리보다 겁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