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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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을 지나며 / 나호열삶 2020. 9. 4. 16:12
병산을 지나며 / 나호열 어디서 오는지 묻는 이 없고 어디로 가는지 묻는 이 없는 인생은 저 푸른 물과 같은 것이다 높은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어리석음이 결국은 먼 길을 돌고 돌아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임을 짧은 인생이 뉘우친다 쌓아 올린 그 키 만큼 탑은 속절없이 스러지고 갖게 기어가는 강의 등줄기에 세월은 잔 물결 몇 개를 그리다 만다 옛 사람이 그러하듯이 나도 그 강을 건널 생각 버리고 저 편 병산의 바위를 물끄러미 쳐다보려니 몇 점 구름은 수줍은듯 흩어지고 돌아갈 길을 줍는 황급한 마음이 강물에 텀벙거린다 병산에 와서 나는 병산을 잊어버리고 병산이 어디에 있느냐고, 손사래를 치고 있다. 개심사 지난 사진을 보면서, 가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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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라는 것에 대하여 / 김현태산 2020. 9. 3. 14:54
인연이라는 것에 대하여 / 김현태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인연이란 잠자리 날개가 바위에 스쳐 그 바위가 눈꽃처럼 하이얀 가루가 될 즈음 그때서야 한번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것이 인연이라고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등나무 그늘에 누워 같은 하루를 바라보는 저 연인에게도 분명 우리가 다 알지 못할 눈물겨운 기다림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겨울 꽃보다 더 아름답고 사람안에 또 한사람을 잉태할 수 있게 함이 그것이 사람의 인연이라고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나무와 구름사이 바다와 섬사이 그리고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수천 수만번의 애닯고 쓰라린 잠자리 날개짓이 숨쉬고 있음을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인연은 서리처럼 겨울 담장을 조용히 넘어오기에 한겨울에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한다고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먹구름처럼 흔들거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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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길에서 마을로 / 고재종삶 2020. 8. 9. 20:39
들길에서 마을로 / 고재종 해거름, 들길에 선다. 기엄기엄 산그림자 내려오고 길섶의 망초꽃들 몰래 흔들린다. 눈물방울 같은 점점들, 이제는 벼 끝으로 올라가 수정방울로 맺힌다. 세상에 허투른 것은 하나 없다, 모두 새 몸으로 태어나니, 오늘도 쏙독새는 저녁 들을 흔들고 그 울음으로 벼들은 쭉쭉쭉쭉 자란다. 이때쯤 또랑물에 삽을 씻는 노인, 그 한 생애의 백발은 나의 꿈. 그가 문득 서천으로 고개를 든다. 거기 붉새가 북새질을 치니 내일도 쨍쨍하겠다. 쨍쨍할수록 더욱 치열한 벼들, 이윽고는 또랑물 소리 크게 들려 더욱더 푸르러진다. 이쯤에서 대숲 둘러친 마을 쪽을 안 돌아볼 수 없다. 아직도 몇몇 집에서 오르는 연기. 저 질긴 전통이, 저 오롯한 기도가 거기 밤꽃보다 환하다. 그래도 밤꽃 사태 난 밤꽃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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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용비지,,,!산 2020. 7. 26. 22:28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물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긴 출장에서 돌아왔습니다 방에 불을 켜고,,,, 닫힌 창을 열어 환기를 합니다 꽃이 피어있을 적에는 몰랐었듯이,,, 돌아온 집이 너무 좋습니다 떠나기 전 다녀온 여름 용비지 사진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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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의 노래 / 이성선삶 2020. 7. 13. 15:22
풀잎의 노래 / 이성선 병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하늘로 걸어가는 사람이다. 지상에 아픔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하늘에 꽃을 바치는 사람이다. 그대 안에 돌아와 계시니 신의 음성이 계시니 깨어 노래하는 자와 함께 있다. 그대를 버리지 못하여 누군가 떨리는 손으로 이마에 등을 켜 주니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져 높고 찬란히 사는 별을 본다. 하늘에 몸 바치고 살아가는 자여 사랑을 바치는 자여 그대 곁에 내가 있어 깊은 밤 풀잎 되어 운다. 김효은 엮음 『이성선 시선』에서 걷는 것이 좋다 나 다움을 찿아서 걷는다 마음이 아픈 사람도 걷다보면 치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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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기도/ 서정윤삶 2020. 6. 25. 22:33
아빠의 기도/ 서정윤 신이여, 나의 아이들을 지켜주소서. 내 손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들을 그의 몫으로 남겨두지 마시고 당신이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주소서. 그가 홀로 쓸쓸해하며 들판의 돌과 바람을 벗하며 놀고 있을 때, 신이여 당신의 바쁜 일이 많을지라도 그의 외로움을 돌아보시고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걸 믿게 해주소서. 먼 옛날 내가 길을 가다 넘어졌을 때 당신이 손 내밀어 일으켜 주신 것처럼. 내 흙장난에 지치고 졸음에 겨워 엄마를 기다릴 때, 당신은 나를 업고 달래며 재워 주셨지요. 어쩌면 나의 아이들이 당신을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을 향해 등돌리지 마시고 그들의 투정마저도 나의 어린 시절처럼 안아 주소서 당신이 아니면 내 아이들은 언제나 한쪽 담 모퉁이에서 울고 있을 겁니다 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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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청벚 개화 상황입니다삶 2020. 4. 21. 22:44
지난 4월 19일 새벽의 개화 상황입니다 개심사 청벚이 피기 시작합니다 상황을 알립니다 새벽이라 미친놈 4명 있었습니다 ㅎㅎㅎ 피기 시작입니다 겹벚꽃도 이제 피기 시작,,, 산사로 가는 길 / 정호승 산사에 오르다가 흘러가는 물에 손을 씻는다 물을 가득 움켜쥐고 더러운 내 손이 떠내려간다 동자승이 씻다 흘린 상추잎처럼 푸른 피를 흘리며 계곡 아래로 나는 내 손을 건지려고 급히 뛰어가다가 소나무 뿌리에 걸려 나동그라진다 떠내려가면서도 기어이 물을 가득 움켜쥔 저놈의 손을 잡아라 어느 낙엽이 떨어지면서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어느 바위가 굴러가면서 땅을 움켜쥐고 어느 밤하늘이 별들을 움켜쥐고 찬란하더냐 산사의 종소리가 들린다 관 밖으로 툭 튀어나온 부처님의 발을 다시 관 속으로 고요히 밀어넣는 저 저녁 종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