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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부추꽃으로 / 박남준삶 2014. 6. 18. 10:50
흰 부추꽃으로 / 박남준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무를 하다보면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다 하루해가 저문다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한다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 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들 더 활활 타오르며 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그건 상처다 상처받은 나무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꺾인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가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 타오르는 것들은 허공에 올라 재를 남긴다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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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기다리며 / 안도현농부이야기 2014. 6. 18. 05:47
고래를 기다리며 /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가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1999년 소월문학상) 우리의 생활은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일의 연속이 아닐까요? 어떤 것들이 이뤄지고, 아니고를 일면서도 기다리는, 그런 마음! 즉, 우리의 삶이 소망의 연속이라면 그것은 미래에 있는 것이지요 소망이란 현재가 아닌 다음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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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 행복했던 기억에 밤을 묻고!산 2014. 6. 17. 21:25
그대는 아는가 만났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했다는 것을 그대와의 만남은 잠시였지만 그로 인한 아픔은 내 인생 전체를 덮었다 바람은 잠깐 잎새를 스치고 지나가지만 그 때문에 잎새는 내내 흔들린다는 것을 아는가 그대, 이별을 두려워했더라면 애초에 사랑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이별을 예감했기에 더욱 그대에게 열중할 수 있었다는 것을 - 사랑했던 날보다, 이정하 오늘은 좀 무거운 저녁입니다 비도 내리고요,,, 참 오랜 시간을 사랑했는데,,, 이젠 그가 떠났습니다 누구나 개인의 바램이 지나치면 모든 것이 남지 않습니다 저도 오늘의 일을 기억하려합니다 나를 고집하지 않고 나를 이득되게 않고 타인의 것과 내 것을 사유하지 않으렵니다 그래야 편하고 행복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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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산 나리꽃산 2014. 6. 16. 06:42
그대에게 가고 싶다/안도현 해 뜨는 아침에는 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밤새 퍼부어대던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하늘도 맨처음인 듯 열리는 날 나도 금방 헹구어낸 햇살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창가에 오랜만에 별이 들거든 긴 밤 어둠 속에서 캄캄하게 띄워 보낸 내 그리움으로 여겨다오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그리움 하나로 무장무장 가슴이 타는 사람이 아니냐 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 새날이 밝아오고 진정 내가 그대 가까이 다가가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되어 우리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봄이 올 때까지는 저 들에 쌓인 눈이 우리를 덮어줄 따뜻한 이불이라는 것도 나는 잊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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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엽서-이외수산 2014. 6. 15. 20:06
여름엽서 / 이외수 오늘 같은 날은 문득 사는 일이 별스럽지 않구나 우리는 까닭도 없이 싸우고만 살아왔네 그 동안 하늘 가득 별들이 깔리고 물소리 저만 혼자 자욱한 밤 깊이 생각지 않아도 나는 외롭거니 그믐밤에도 더욱 외롭거니 우리가 비록 물 마른 개울가에 달맞이꽃으로 혼자 피어도 사실은 혼자이지 않았음을 오늘같은 날은 알겠구나 낮잠에서 깨어나 그대엽서 한 장을 나는 읽노라 사랑이란 저울로도 자로도 잴 수 없는 손바닥만한 엽서 한 장 그 속에 보고싶다는 말 한마디 말 한마디만으로도 내 뼛속 가득 떠오르는 해 일기 / 안도현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