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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곡사의 가을,,, !
    2016. 10. 23. 19:33

    지난주 다녀온 마곡사 입니다

    비도 내리고 오후였으니까,,,

    이번주는 더 가을이 깊이 물들었으리라,,,,!

     

    선물 / 나태주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 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

    오르는 시내 옆으로 멋진 풍경입니다

     

     

     

    숲 속의 작은 집이 가을에 뭍혔습니다

    좀 지나면 가을풍경을 담는데 아주 멋지겠죠?

     

     

    마곡사로 들어갑니다

     

    진입로 양 옆으로도 물들어 갑니다

     

     

     

    마곡사 경내로 들어왔습니다

     

     

    해탈문

     

     

     

     

    명부전 부근은 단풍이 아직입니다

     

     

     

    마곡사 경내!

     

     

     

     

    탑을 중심으로 주변을 담아 봅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이다. 이곳의 물과 산의 형세는 태극형이라고 하여 『택리지』·『정감록』 등의 여러 비기()에서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의 하나로 꼽고 있다. 절의 창건 및 사찰명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번째 설은 640년(선덕여왕 9)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이 선덕여왕에게서 하사받은 전() 200결로 절을 창건하기 위한 터를 물색하다가 통도사()·월정사()와 함께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자장이 절을 완공한 뒤 낙성식을 할 때 그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이 ‘삼대[]와 같이 무성했다’고 하여 ‘마()’자를 넣어 마곡사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다. 두번째 설은 신라의 승 무염()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이 절을 지을 때 스승인 마곡보철()을 사모하는 뜻에서 마곡사라고 하였다는 설과, 절을 세우기 전에 이곳에 마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마곡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창건 이후 이 절은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약 200년 동안 폐사가 된 채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던 것을 1172년(명종 2)에 보조국사() 지눌()이 제자 수우()와 함께 왕명을 받고 중창하였다. 보조가 처음 절을 중창하려고 할 때 도둑들에게 물러갈 것을 명하였으나 도둑들은 오히려 국사를 해치려 하였다. 이에 보조가 공중으로 몸을 날려 신술()로써 많은 호랑이를 만들어서 도둑에게 달려들게 하였더니 도둑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거나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도둑들에게서 절을 되찾은 보조는 왕에게서 전답 200결을 하사받아 대가람을 이룩하였다. 당시의 건물은 지금의 배가 넘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타버렸다. 그 뒤 60년 동안 폐사가 되었다가 1651년(효종 2)에 각순()이 대웅전과 영산전·대적광전 등을 중수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31본산()시대에는 도내 100여 사찰을 관장하는 본산이 되었다.

     

    또한 이 절은 김구()와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한말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 쓰치다()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나루에서 죽인 김구는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 숨어서 승려를 가장하며 살았다. 지금도 대광명전 앞에는 김구가 심은 향나무가 있는데, 그 옆에 ‘김구는 위명()이요 법명은 원종()이다’라고 쓴 푯말이 꽂혀 있다. 현재 이 절은 충청남도 70여 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교()를 사이에 두고 보물 제801호인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과 보물 제800호인 공주 마곡사 영산전(殿), 보물 제802호로서 천장의 무늬가 아름다운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殿), 강당으로 사용하는 흥성루(), 해탈문, 천왕문, 16나한과 2구의 신장을 모신 응진전(殿), 명부전이 있으며, 응진전 맞은편에는 요사채인 심검당()이 ㄷ자형으로 크게 자리잡고 있다.

     

    또 영산전 옆에는 벽안당()과 매화당() 등이 있으며, 그 밖에도 염화당()·연화당()·매화당() 등 승려가 거처하는 요사채가 매우 많다. 이들 건물 중 영산전은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조선 중기의 목조건축 양식을 대표할만한 것이다. 그 현판은 세조가 김시습()을 만나기 위해서 이 절에 왔다가 만나지 못한 채 돌아가면서 남긴 필적이라 한다.

    또 대웅보전은 1651년에 각순이 중수한 것으로, 현판은 김생()의 글씨라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특이한 2층 건물로 조선 중기의 사원건축 양식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며, 건물의 기둥을 안고 한바퀴 돌면 6년을 장수한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밖의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69-1호로 지정된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1과 보물 제270호로 지정된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6, 보물 제799호로 지정된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보물 제1260호 공주 마곡사 석가모니불괘불탱,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호인 마곡사 동제 은입사향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2호인 마곡사 동종 등이 있다.

     

    이 중 오층석탑은 풍마동다보탑()이라고도 하는데, 인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도 하나 라마교 탑과 비슷하여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탑은 임진왜란 때 무너져 탑 안의 보물들이 도난당한 지 오래이나 1972년에 수리할 때 동제 은입사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이 탑은 전 국민의 3일 기근을 막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전설이 있으며, 한국·인도·중국 등 세계에서 3개밖에 없는 귀중한 탑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대광보전 마루에는 나무껍질로 만든 30평 정도의 삿자리가 있다. 이 자리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조선 후기에 이름 없는 앉은뱅이가 이 절을 찾아와서 부처님께 백일기도를 드렸다. 그는 불구를 고치기 위해서 백일기도하는 동안 틈틈이 이 삿자리를 짰다. 이 삿자리는 참나무를 한 끝에서 잇고 또 이어 한 줄로 완성한 것인데, 그는 이 자리를 짜면서 법당에 봉안된 비로자나불에게 자신의 불구를 낫게 해줄 것을 기도하였다. 백일 뒤 일을 다 끝내고 밖으로 나가는데 자신도 모르게 일어서서 법당문을 걸어나갔다고 한다.

     

    부속암자로는 심정암()·부용암()·북가섭암()·토굴암()·백련암()·영은암()·대원암()·은적암() 등이 있다. 이 절은 ‘춘마곡추갑사()’라는 말이 전해질 만큼 봄 경치가 뛰어나다. 백련암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특히 빼어나며, 북가섭암의 바위 뒤에 있는 천미장군수()는 뛰어난 약수이다. 또 마곡사 앞 냇가 암벽에는 부여 고란사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고란초가 자생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곡사 [麻谷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용마루 위에 익어 가는 가을!

     

     

    문짝!

    조상의 숨결과 역사가 살아 숨쉽니다

     

     

     

     

     

     

     

    일주문 주변의 풍경!

     

     

     

    예전에는

     

    획 지나가던 길도

     

    이제는 자세히 보려한다

     

    그곳이 어디든지,,,

     

    내 마음에 깊음이란 것이 생기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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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곳에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