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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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기도/ 서정윤삶 2020. 6. 25. 22:33
아빠의 기도/ 서정윤 신이여, 나의 아이들을 지켜주소서. 내 손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들을 그의 몫으로 남겨두지 마시고 당신이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주소서. 그가 홀로 쓸쓸해하며 들판의 돌과 바람을 벗하며 놀고 있을 때, 신이여 당신의 바쁜 일이 많을지라도 그의 외로움을 돌아보시고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걸 믿게 해주소서. 먼 옛날 내가 길을 가다 넘어졌을 때 당신이 손 내밀어 일으켜 주신 것처럼. 내 흙장난에 지치고 졸음에 겨워 엄마를 기다릴 때, 당신은 나를 업고 달래며 재워 주셨지요. 어쩌면 나의 아이들이 당신을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을 향해 등돌리지 마시고 그들의 투정마저도 나의 어린 시절처럼 안아 주소서 당신이 아니면 내 아이들은 언제나 한쪽 담 모퉁이에서 울고 있을 겁니다 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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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암(看月庵)에서 / 이필종삶 2020. 2. 23. 11:51
간월암(看月庵)에서 / 이필종 저리 깊은 고도, 스님 떠난 지 아득한데 풍경소리 은은하고 전설마저 고요하구나 채우고 비워가는 인생, 바다기슭에 남루한, 한 생애도 철썩이고 있구나 중천에 걸린 달빛, 어둠 벗어나려는 선사의 발길 따라 무학대사 가슴이듯, 내 가슴에 등불을 든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로만 보인다” 누구 앞에서도 곧은 말은 천년을 간다 노승의 청정음으로 파도에 실려오고 어촌 포구에 나는 고요의 닻을 내린다. 봄 눈이 흠벅 내린 날, 이른 아침 햇살도 따뜻했습니다 삶의 긴 여정에서 뜨거움 보다는, 지치지 않는 꾸준한 열정이 그립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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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도 풍경 / 한휘준삶 2019. 10. 11. 08:24
간월도 풍경 / 한휘준 천수만 간월도에서 매운 어리굴젓이랑 광어회를 맛있게 먹다가 그녀 생각에 핑 눈물이 났다 아니야- 울며 겨자 먹기라 하였던가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나는 것은 매운 겨자 탓이라 하였었지 그대 목이 메인 그리움에 우럭 매운탕을 먹다가 끝내 , 목구멍에 가시가 걸렸다 그래 , 다가오다 먼발치에서 섬이 되어 버린 삼킬 수 없는 가시 같은 목 메인 그리움 흔들리는 파도에 씻겨 늘 푸른 울음 우는 너의 목소리였지 나는 처음 먹는 우럭 매운탕이 별로 내키지 않는다고 그만 말하고 말았지 바람이 먼 곳에서 불어왔다 파도가, 물결이 걸작을 만들어 낸다 모래언덕에 가을이 왔다 바람에 흩어지고, 모이는 사구 언덕 쌓이고, 흘러 내리면서 긴 역사를 만들어내는 현장, 간월암을 바라보며 저 앞에 느티나무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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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부는 날, 간월암에 가다삶 2019. 9. 5. 20:53
가을의 노래 / 김대규 어디론가 떠나고 싶으면 가을이다 떠나지는 않아도 황혼마다 돌아오면 가을이다 사람이 보고 싶어지면 가을이다 편지를 부치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주머니에 그대로 있으면 가을이다 가을에는 마음이 거울처럼 맑아지고 그 맑은 마음결에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써 보낸다. 주여! 라고 하지 않아도 가을에는 생각이 깊어진다. 한 마리의 벌레 울음소리에 세상의 모든 귀가 열리고 잊혀진 일들은 한 잎 낙엽에 더 깊이 잊혀진다. 누구나 지혜의 걸인이 되어 경험의 문을 두드리면 외로움이 얼굴을 내밀고 삶은 그렇게 아픈 거라 말한다. 그래서 가을이다 산 자의 눈에 이윽고 들어서는 죽음 死者(사자)들의 말은 모두 시가 되고 멀리 있는 것들도 시간 속에 다시 제자리를 잡는다. 가을이다 가을은 가을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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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서정윤삶 2019. 7. 4. 22:01
노을 /서정윤 누군가 삶을 마감하는가 보다 하늘에는 붉은 꽃이 가득하다 열심히 살다가 마지막을 불태우는 목숨 흰 날개의 천사가 손잡고 올라가는 영혼이 있다보다 유난히 찬란한 노을이다. 세상에서 어려울 때, 떠는 것이 여행은 아니다 소란한 일상에서 잠시 비겨 가는 것이다 여행은 예기치 못한 마주침이 있어서 좋다 그래서 나는 가끔 우리집 주인님을 집에 두고 떠난다 어차피 돌아올 길이지만, 그것이 자유처럼 느껴진다 소망하지만,,,, 고요함을 찿아 떠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광고의 카피처럼, 여행은 자유다,,,! 간월암 일몰 앞에서는 더욱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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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마음의 길 / 박노해삶 2019. 3. 12. 19:00
첫 마음의 길 / 박노해 첫마음의 길을 따라 한결같이 걸어온 겨울 정오 돌아보니 고비마다 굽은 길이네 한결같은 마음은 없어라 시공을 초월한 곧은 마음은 없어라 시간과 공간 속에서 늘 달라 져온 새로와진 첫마음이 있을 뿐 변화하는 세상을 거슬러 오르며 상처마다 꽃이 피고 눈물마다 별이 뜨는 굽이굽이 한결같은 첫마음이 있을 뿐 30여년이 흘렀습니다 솜털 보숭한 청년이 저에게 약속한 것이 있었습니다 농업과 농촌에 작은 변화를 주는 사람이 되자고,,, 저의 작은 손에 희망이란 글자를 들고 달려 보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어렵고도 어려운 일임을 알았지만,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열정의 기간을 뒤로 하고, 지나온 시간을 고이 고이 정리합니다 남의 손을 씻어주다 보면, 내 손도 씻어져 깨끗해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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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암 일몰 앞에 서서삶 2019. 1. 17. 09:14
행복은 사라진 후에야 빛을 낸다...박성철 물고기는 물 속에 있을 때는 그 어느 곳으로든 갈 수 있는 자유와 행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고기는 자신이 자유롭고 행복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땅 위에 올라오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때가 행복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요? 가지고 있을 때는 모르다가 꼭 잃어버린 후에야 뒤늦게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못난 습성 행복은 공기 같은 것입니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어느 곳에나 있는. 영국 속담 중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행복은 사라진 후에야 빛을 낸다...." 사람들이 행복의 실체를 보고 만질 수 있다면 그것이 떠나가기 전에 소중히 다루련만 행복은 언제나 떠나가면서 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