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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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 천양희삶 2022. 8. 9. 18:22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 천양희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어떤 날은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막무가내 올라간다 고비를 지나 비탈을 지나 상상봉에 다다르면 생각마다 다른 봉우리들 뭉클 솟아오른다 굽은 능선 위로 생각의 실마리들 날아다닌다 뭐였더라, 뭐였더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의 바람소리 생각(生覺)한다는 건 생(生)을 깨닫는다는 것 생각하면 할수록 생(生)은 오리무중이니 생각이 깊을수록 생(生)은 첩첩산중이니 생각대로 쉬운 일은 세상에 없어 생각을 버려야 살 것 같은 날은 마음이 종일 벼랑으로 몰린다 생각을 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 생각만 하고 살 수 없다는 생각 생각 때문에 밤새우고 생각 때문에 날이 밝는다 생각이 생각을 놓아주지 않는다 지독한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집회를 다녀오면서 이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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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묘지 / 폴 발레리삶 2021. 8. 13. 06:34
해변의 묘지 / 폴 발레리 비둘기들 거니는 저 조용한 지붕이, 소나무들 사이, 무덤들 사이에 꿈틀거리고, 올바름인 정오가 거기서 불꽃들로 바다를 구성한다, 늘 되풀이되는 바다를 ! 오, 신들의 고요에 오래 쏠린 시선은 한 가닥 명상 뒤의 고마운 보답 ! 날카로운 번갯불들이 얼마나 순수한 작업이 잗다란 물거품의 숱한 금강석을 간직하고 있으며, 또 그래서 얼마나 아늑한 평화가 잉태되는 것만 같은가 ! 하나의 해가 심연 위에 쉴 때는, 영구 원인의 두 가지 순수 작품, 시간은 반짝이고 꿈은 바로 앎이다. 단단한 보물, 조촐한 미네르바 신전, 고요의 더미, 눈에 띄는 푸짐한 저장, 우뚝 솟은 물, 불꽃 너울 쓰고도 그 많은 잠을 속에 간직한 눈이여, 오, 나의 침묵 ! 넋 속의 신전, 그러나 기왓장도 무수한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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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위로하는 날 / 이해인삶 2021. 5. 16. 11:30
내가 나를 위로하는 날 / 이해인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 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가끔은 큰 일이 아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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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의 영토 / 이해인삶 2021. 5. 13. 15:03
민들레의 영토 / 이해인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로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 남은 저녁 노을에 저렇게 긴 강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 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 보낼 기쁨의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턱 고이고, 바람 맞으며 노을 속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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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그렇게 살 수는 없을까 / 김소엽삶 2021. 4. 19. 10:18
물처럼 그렇게 살 수는 없을까 / 김소엽 가장 부드러운 물이 제 몸을 부수어 바위를 뚫고 물길을 내듯이 당신의 사랑으로 나의 단단한 고집과 편견을 깨뜨려 물처럼 그렇게 흐를 수는 없을까 내 가슴속에는 언제나 성령의 물이 출렁이는 사랑의 통로 되어 갈한 영혼을 촉촉이 젖게 하시고 상한 심령에 생수를 뿌리게 하시어 시든 생기를 깨어나게 하는 생명의 수로가 될 수는 없을까 물처럼 낮은 곳만 찾아 흘러도 넓고 넓은 바다에 이르듯이 낮은 곳만 골라 딛고 살아가도 영원한 당신 품에 이르게 하시고 어떤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오늘도 내일도 여일하게 쉼 없이 나의 갈 길 다 달려가면 마침내 구원의 바다에 다다를 것을 믿으며 물처럼 내 모양 주장하지 않아도 당신이 원하는 모양대로 뜻하시는 그릇에 담기기를 소원하는 유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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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 전은영삶 2021. 4. 9. 18:15
노을 / 전은영 바이올린을 켜십시오 나의 창가에서 타오르던 오늘 상기된 볼 붉은 빛 속에 가만히 감추고 사랑의 세레나데를 연주해 주십시오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주십시오 곧 다가올 달빛 함께 가벼운 춤 출 수 있게 고운 선율로 복숭아 빛 그대 볼 감싸 안게 다가오십시오 떠나버린 한낮의 뜨거움을 새악시 외씨버선처럼 조심스레 산등성이에 걸어 놓고 또다시 돌아올 아스라한 새벽 빛 맞으러 길 떠날 수 있게 사뿐한 사랑으로 그대 내게 오십시오 노을을 바라봄은 기다림, 붉은 여운은 내일 떠오를 태양이리라 내일을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