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사
-
꽃들은 경계를 넘어간다 / 노향림산 2018. 4. 25. 19:29
꽃들은 경계를 넘어간다 / 노향림 꽃들이 지면 모두 어디로 가나요 세상은 아주 작은 것들로 시작한다고 부신 햇빛 아래 소리 없이 핀 작디작은 풀꽃들, 녹두알만 한 제 생명들을 불꽃처럼 꿰어 달고 하늘에 빗금 그으며 당당히 서서 흔들리네요 여린 내면이 있다고 차고 맑은 슬픔이 있다고 마음에 환청처럼 들려주어요 날이 흐리고 눈비 내리면 졸졸졸 그 푸른 심줄 터져 흐르는 소리 꽃잎들이 그만 우수수 떨어져요 눈물같이 연기같이 사람들처럼 땅에 떨어져 누워요 꽃 진 자리엔 벌써 시간이 와서 애벌레처럼 와글거려요 꽃들이 지면 모두 어디로 가나요 무슨 경계를 넘어가나요 무슨 이름으로 묻히나요 비 내리던 날, 개심사 추녀 아래서, 젖어 봅니다
-
개심사 단풍에 취하다,,,!산 2017. 11. 2. 20:59
충남 서산 개심사 단풍이 물들어 갑니다 봄날의 청벗에서 부터 여름 백일홍,,, 가을 단풍으로 이어집니다 겨울날이 기다려집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최승자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 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이제 이울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도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
-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 도종환산 2017. 8. 25. 21:40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 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
-
나에게 사랑이란 / 정일근삶 2017. 6. 16. 19:46
나에게 사랑이란 마음속에 누군가를 담고 살아가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습니다. 사랑하기에 젊은날엔 그대로 하여 마음 아픈것도 사랑의 아픔으로만 알았습니다 이제 그대를 내마음 속에서 떠나보냅니다. 멀리 흘러가는 강물에, 아득히 부는 바람에 잘가라 사랑아, 내마음 속의 그대를 놓아보냅니다. 불혹, 무음에 빈자리 하나 만들어 놓고서야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워놓고 기다리는 일이어서 그 빈자리로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어서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나도 알게 되었나 봅니다 누군가에 대한 기다림, 그을 위한 바램이 있었습니다 이제 생의 한가운데에 서서 빛 너머의 빛을 보듯이 삶을 추정해본다
-
불감증을 위하여 1/ 노혜경삶 2017. 5. 24. 13:36
봄은 가봐야 느낀다 지난 어느날 개심사 그르터기에서 봄을 바라보던 나의 마음은 봄이었다 오늘은 비가 내린다 간절히 바라던 비다 기다림에 지치면 봄도 가고,,,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이 봄에 반은 자연이,,, 그리고, 반은 이 땅에 사는 우리가 만드는 것인가요? 불감증을 위하여 1/ 노혜경 나는 모든 확실한 것의 이름 하루가 끝날 무렵 눈을 들어 그림자에 깔린 거리를 본다 욕망이 거대한 입을 벌려 시간을 삼킨다. 비명을 지르며, 뒤틀면서, 그러다가 소리없이 사라져 가는 하얗고 붉고 아름다운 집. 견고해 보이는 먼지의 집 저것은 너의 집, 너의 길, 너의 산하 너의 나무, 너의 벌레, 너의 시간이다. 너의 사랑, 너의 분노, 너의 슬픔 내가 비추는 너의 모든 것인 세계 위에 빨갛고 확실한 동그라미를 쳐 놓겠다..
-
봄비 속을 걷다 / 류시화산 2017. 5. 5. 15:59
봄비 속을 걷다 / 류시화 봄비 속을 걷다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봄비는 가늘게 내리지만 한없이 깊이 적신다 죽은 라일락 뿌리를 이깨우고 죽은 자는 더 이상 비에 젖지 않는다 허무한 존재로 인생을 마치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봄비 속을 걷아 승려처럼 고개를 숙인 저산과 언덕등 집으로 들어가는 달팽이의 뿔들 구름이 쉴새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비로소 알고 여러 해만에 평온을 되찾다 개심사 청벗나무 아래,,,!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있는 것들에 관심이 앖는 사람은 목적지에 도달해서도 행복하지 못하다 --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
-
개심사 돌담에 서서삶 2017. 4. 28. 22:14
혜화역 4번 출구/이상국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 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大地)의 소작(小作)이다 내 조상은 수백 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 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 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 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 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
상왕산 개심사,,,!산 2017. 4. 27. 13:17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세상에는 시간을 쏱아 사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가고, 또 가고, 또 다시 가라 그러면 장소가 비로소 속살을 보여줄 것이다 짐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일정은 계획한 것보다 더 오래 잡으라 인생은 관광 tour이 아니라 여행 travel이다 그리고 여행은 고난 travel과 어원이 같다 -- 우리가 삶을 사랑하면 삶 역시 우리에게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