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아침 / 이정하삶 2022. 9. 7. 08:15
이 아침 / 이정하
커피 물을 끓이는 시간만이라도
당신에게 놓여 있고 싶었습니다만
어김없이 난 또 수화기를 들고 말았습니다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요 며칠
그대가 왜 그렇게 떠나갔는지
왜 아무 말도 없이 떠나갔는지
그 이유가 몹시 궁금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당신을 너무 사랑한 것이 아닐까요
잠시라도 가만히 못 있고 수화기를 드는
커피 물을 끓이는 순간에도 당신을 생각하는
내 그런 열중이 당신을 너무 버겁게 한 건 아닐까요
너무 물을 많이 줘서 외려 말라 죽게 한
베란다의 화초처럼
여전히 수화기 저편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고
늘 그런 것처럼 용건만 남기라는 낯모를 음성에
나는 아무 할 말도 못 하고 머뭇거립니다
그런 순간에 커피 물은 다 끓어 넘치고
어느덧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주전자를 보며
어쩌면 내 그런 집착이 내 마음을 태우고
또 당신마저 다 타버리게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은 새로 끓이면 되지만
내 가슴을 끓게 만들 사람은
당신 말고는 다시 없을 거란 생각에
당신이 또 보고 싶어졌습니다
내 입에 쓰게 고여오는 당신
나랑 커피 한 잔 안 하실래요?
오늘도 나의 몫을 살아갑니다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빛 기도 / 이해인 (15) 2022.09.10 꽃의 선언/ 류시화 (5) 2022.09.07 인연서설 / 문병란 (2) 2022.09.05 가을 /김현승 (5) 2022.09.04 쌀 석 섬 / 안상학 (3) 2022.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