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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 오래 천천히 / 이병률
    2020. 8. 24. 06:27

    아주 오래 천천히 / 이병률

    떨어지는 꽃들은 언제나 이런 소리를 냈다

    순간
    순간

    나는 이 말들을 밤새워 외우고 또 녹음하였다
    소리를 누르는 받침이 있다는 사실이 좋아서
    그 받침이 순간을 받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새벽에 나는 걸어
    어느 절벽에 도착하여
    그 순간순간의 ㄴ들이
    당도할 곳은 있는지
    절벽 저 아래를 향해 물었다

    이번 생은 걸을 만하였고
    파도도 참을 만은 하였으니
    태어나면 아찔한 흰분홍으로나 태어나겠구나
    그렇다면 절벽의 어느 한 경사에서라면 어떨지

    그리하여 내가 떨어질 때는
    순간과 순간을 겹겹이 이어 붙여
    이런 소리를 내며

    순간들
    순간들

    아주 아주 먼 길을
    오래 오래 그리고 교교히 떨어졌으면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운가에 달려있다

     

    --- 법정스님, 1998,2,24 명동성당 강론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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