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의 회상/이외수

농돌이 2022. 6. 23. 18:24

봄밤의 회상/이외수

밤 새도록 산문시 같은 빗소리를

한 페이지씩 넘기다가 새벽녘에

문득 봄이 떠나가고 있음을 깨달았네

내 생애 언제 한번

꿀벌들 날개짓소리 어지러운 햇빛 아래서

함박웃음 가득 베어물고

기념사진 한 장이라도 찍어 본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의 풍경들은 언제나 흐림

젊은날 만개한 벚꽃같이 눈부시던 사랑도 끝내는

종식되고 말았네

모든 기다림 끝에 푸르른 산들이 허물어지고

온 세상을 절망으로 범람하는 황사바람

그래도 나는 언제나 펄럭거리고 있었네

이제는 이마 위로 탄식처럼 깊어지는 주름살

한 사발 막걸리에도 휘청거리는 내리막

어허,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네

별로 기대할 추억조차 없는 나날 속에서

올해도 속절없이 봄은 떠나가는데

무슨 이유로 아직도 나는

밤새도록 혼자 펄럭거리고 있는지를

긴 하루를 보내고 비를 맞이합니다

한잔 하렵니다

 

갑갑함에 찿앗던 친구여!

걱정마시게

길은 하나로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