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을 위한 연가 / 김승희

농돌이 2017. 12. 15. 22:34

미완성을 위한 연가 / 김승희


하나의 아름다움이 익어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슬픔이

시작되어야 하리

하나의 슬픔이 시작되려는

저물 무렵 단애 위에 서서

이제 우리는 연옥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꿈꾸어서는 안된다고

서로에게 깊이 말하고 있었네



하나의 손과 손이

어둠 속을 헤매어

서로 만나지 못하고 스치기만 할 때

그 외로운 손목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무엇인지 알아?

하나의 밀알 비로소 썩을 때

별들의 씨앗이

우주의 맥박 가득히 새처럼

깃을 쳐오르는 것을

그대는 알아?



하늘과 강물은 말없이 수 천 년을 두고

그렇게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네

쳐다보는 마음이 나무를 만들고

쳐다보는 마음이 별빛을 만들었네



우리는 몹시 빨리 더욱 빨리

재가 되고 싶은 마음뿐이었기에

어디에선가,분명

멈추지 않으면 안 되었네

수갑을 찬 손목들끼리

성좌에 묶인 사람들끼리



하나의 아름다움이 익어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그리움이 시작되어야하리

하나의 긴 그리움이 시작되려는

깊은 밤 단애 위에 서서

우리는 이제 연옥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필요치가 않다고

각자 제 어둠을 향하여

조용히 헤어지고 있었네

 

 

 

 

용봉산 병풍바위 설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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