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을 말리면서 / 이향아

농돌이 2018. 4. 23. 19:02

꽃다발을 말리면서 / 이향아

  

누가 내게

이와 같은 슬픔까지 알게 하는가

꽃이 피는 아픔도 예사가 아니거늘

저 순일한 목숨의 송이 송이

붉은 울음을 꺾어다가

하필이면 내 손에서 시들게 하는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것처럼

꽃은 매달려서 절정을 모으고

영원히 사는 길을 맨발로 걸어서

이렇게 순하게 못 박히나니

다만 죽어서야

온전히 내게로 돌아오는 꽃이여

너를 안아 올리기에는

내 손이 너무 검게

너무 흉하게 여위었구나

 

황홀한 순간의 갈채는 지나가고

이제 남은 것은 빈혈의 꽃과

무심한 벽과

굳게 다문 우리들의 천 마디 말뿐

죽어가는 꽃을 거꾸로 매다노라면

물구나무서서 솟구치는

내 피의 열기,

내 피의 노여움,

네 피의 통곡,

꽃을 말린다 입술을 깨물고

검게 탄 내 피를 허공에 바랜다

 

 

비 내리는 날,

 

보리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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