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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에 대한 생각/ 고재종
    2023. 4. 6. 04:34

    길에 대한 생각/ 고재종

     

    마음은 쫓기는 자처럼 화급하여도 우리는

    늘 너무 늦게 깨닫는 것일까. 새벽에 일어나

    흰 이슬 쓰고 있는 푸성귀밭에 서면

    저만큼 버려두었던 희망의 낯짝이 새삼

    고개 쳐드는 모습에 목울대가 치민다. 애초에

    그 푸르름, 그 싱싱함으로 들끓었던 시절의

    하루하루는 투전판처럼 등등했지. 그 등등함만큼

    쿵쿵거리는 발길은 더 뜨거웠으니

    어느 순간 텅 비어버린 좌중에 놀라,

    이미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타협해 버린

    연인들처럼, 그렇게, 한번 그르쳐 든 길에서

    남의 밭마저 망쳐온 것 같은 아픔은 깊다.

    살다 보면 정 들겠지, 아니 엎어지든 차이든

    가다 보면 앞은 열리겠지, 애써 눈을 들어

    먼 산을 가늠해 보고 또 마음을 다잡는 동안

    세월의 머리털은 하얗게 쇠어갔으니, 욕망의

    초록이 쭉쭉 뻗쳐오르던 억새풀 언덕에

    마른 뼈들 스치는 소리는 생생하다. 그 소리에

    삶의 나날의 몸살에 다름 아니던 별들은

    또 소스라치다 잦아드는 새벽, 오늘도

    푸성귀밭에 오줌발을 세우는 것은

    한번도 잡아본 적이 없는 갑오패 같은 그리움

    이토록 질기다는 것인지. 어디서 종은

    또 울고, 그러면 황급히 말발굽을 갈아 끼우고

    잡목에 덮인 저 황토잿길을 올려다보는

    마부처럼, 꿈에 견마 잡힌 우리도 뚜벅뚜벅

    발길을 떼야 하는 일이 새삼 절실한데

    소슬바람은 부는 것이다. 계절은 벌써

    깊어져, 우리는 또 한발 늦는다 싶은 것이다.

    한발 늦는 그것이 다시 길을 걷게 한다면

    저 산도 애써 아침해를 밀어올리긴 하지만.

    풍경 속으로 꺼져버리는 풍경?

    지난 3일의 홍성 산불 현장에 있었습니다

    화마의 참혹함은 표현하기 어렵지만, 비가 내려서 잔불의 걱정은 한시름 놓습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깊이 패이고 패인 상처가 하루속히 치유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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