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월암 연등

농돌이 2023. 5. 6. 18:25

연등 / 문성해

 

이 나이 되도록

나는 한 번도 연등을 달아본 적이 없네

연등을 다는 자의 간절한 마음이 되어본 적이 없네

 

연등을 다는 일은

나를 작게 둥글려 연등 속에 넣고

바람과 빗속에 흔들리는 일

방에 돌아와 누워도

흔들리는 연등을 생각하는 일

 

어떤 자는 제 몸을 활활 불사르고

어떤 자는 일찍이 심지를 끄고

어떤 자는 바람에 균형을 잡고

나는 그중 가장 나중의 자가 되고 싶어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연등의 시절이 오면

나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사립문짝에

발그레 뺨 붉힌 그것을 매달고 싶어

 

등불 위로 뜨거움을 참고 내려앉는 어둠을

내가 나를 보듯 들여다보고 싶어

연등을 켜고 끌 때

내 얼굴을 웃음을 숨소리를

생각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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