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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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온의 시 / 문정희삶 2019. 2. 2. 21:01
체온의 시 / 문정희 빛은 해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그대 손을 잡으면 거기 따스한 체온이 있듯 우리들 마음 속에 살아 있는 사랑의 빛을 나는 안다 마음 속에 하늘이 있고 마음 속에 해보다 더 눈부시고 따스한 사랑이 있어 어둡고 추운 골목에는 밤마다 어김없이 등불이 피어난다 누군가는 세상은 추운 곳이라고 말하지만 또 누군가는 세상은 사막처럼 끝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무거운 바위 틈에서도 풀꽃이 피고 얼음장을 뚫고도 맑은 물이 흐르듯 그늘진 거리에 피어나는 사랑의 빛을 보라 산등성이를 어루만지는 따스한 손길을 보라 우리 마음 속에 들어 있는 하늘 해보다 더 눈부시고 따스한 빛이 아니면 어두운 밤에 누가 저 등불을 켜는 것이며 세상에 봄을 가져다 주리 입춘이 이제 2일 남았습니다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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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보내고 / 이외수삶 2017. 8. 9. 22:08
그대를 보내고 / 이외수 이제 집으로 돌아 가자 우리들 사랑도 속절없이 저물어 가는날 빈 들녘 환청 같이 나지막히 그대 이름 부르면서 스러지는 하늘이여 버리고 싶은 노래들은 저문강에 쓸쓸히 물비늘로 떠돌게 하고 독약 같은 그리움에 늑골을 적시면서 실어증을 앓고 있는 실삼나무 작별 끝에 당도하는 낯선 마을 어느 새 인적은 끊어지고 못다한 말들이 한 음절씩 저 멀리 불빛으로 흔들릴 때 발목에 쐐기풀로 감기는 바람 바람만 자학처럼 데리고 가자 운여해변에 아내와 다녀왔습니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어서 말합니다 나는 다시 온다 이 태양과 더불어 , 이 독수리와 더불어, 이 뱀과 더불어, 그러나, 하나의 새로운 삶, 또는 보다 나은 삶 비슷한 삶으로 나는 다시 돌아 올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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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대하여 / 정일근삶 2017. 6. 12. 22:36
아름다움에 대하여 / 정일근 영원한 것은 아름답다고 믿은 적이 있었다 영원히 살기를 바랐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삶이 나에게 가르쳤다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아름다운 것은 순간이었다 언제나 지나가면 사라지는 헛것이었다 하늘 깊이 반짝이는 새벽별이나 붉게 타오르는 저녁놀 풀잎 끝에 매달린 맑은 이슬 같은 내가 진정 아름다워하는 것들은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오래 기다렸던 첫눈도 눈이 피우는 나무의 눈꽃들도 결국 녹아버리고 마는 흔적이었다 사람의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첫사랑 첫키스 같은 가슴 떨림도 흑백사진으로 남는 추억이었다 그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한 약속도 헛것이 되고 말았다 내가 영원히 사랑한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한 것은 헛것이다 백 년 동안 색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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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교실 1 / 정일근삶 2017. 6. 12. 07:19
바다가 보이는 교실 1 / 정일근 -우리반 내 아이들에게 너희들 속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있구나 저 산에 들에 저절로 돋아나 한 세상을 이룬 유월 푸른 새 잎들처럼, 싱싱한 한 잎 한 잎의 무게로 햇살을 퉁기며 건강한 잎맥으로 돋아나는 길이 여기 있구나 때로는 명분뿐인 이 땅의 민주주의가, 때로는 내 혁명의 빛바랜 꿈이, 칠판에 이마를 기대고 흐느끼는 무명 교사의 삶과 사랑과 노래가 긴 회한의 그림자로 누우며 흔들릴 때마다 너희들은 나를 환히 비추는 거울, 나는 바다가 보이는 교실 창가에 서서 너희들 착한 눈망울 속을 조용히 들여다보노라면 점마다 고운 빛깔과 향기의 이름으로 거듭나는 별, 별들 저 신생의 별들이 살아 비출 우리나라가 보인다 내 아이들아, 너희들 모두의 이름을 불러 손잡으며 걷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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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읽는 10월/ 황동규!삶 2014. 11. 24. 07:02
시월 / 황동규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2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 하리. 두견이 우는 숲 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木琴소리 목금소리 목금소리. 3 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한 탓이리. 4 아늬, 石燈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 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 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5 낡은 단청 밖으론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 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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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있어 더 좋은 하루 / 윤보영삶 2014. 9. 24. 21:58
그대가 있어 더 좋은 하루 / 윤보영 그대를 잠깐 만났는데도 나뭇잎 띄워 보낸 시냇물처럼 이렇게 긴 여운이 남을 줄 몰랐습니다 보고 있는데도 보고 싶어 자꾸 바라보다 그대 눈에 빠져 나올 수 없었고 곁에 있는데도 생각이 나 내 안에 그대 모습 그리기에 바빴습니다 그대를 만나는 것이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오래 전에 만났을 걸 아쉽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만난 것은 사랑에 눈뜨게 한 아름다운 배려겠지요 걷고 있는데도 자꾸 걷고 싶고 뛰고 있는데도 느리다고 생각될 때처럼 내 공간 구석구석에 그대 모습 그려 넣고 마술 걸린 사람처럼 가볍게 돌아왔습니다 그대 만난 오늘은 영원히 깨기 싫은 꿈을 꾸듯 아름다운 감정으로 수놓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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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지의 추억!삶 2014. 6. 28. 16:57
놀 / 이외수 이 세상에 저물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누군가가 그림자 지는 풍경 속에 배 한 척을 띄우고 복받치는 울음을 삼키며 뼈가루를 뿌리고 있다 살아 있는 날들은 무엇을 증오하고 무엇을 사랑하랴 나도 언젠가는 서산머리 불타는 놀 속에 영혼을 눕히리니 가슴에 못다한 말들이 남아 있어 더러는 저녁강에 잘디잔 물비늘로 되살아나서 안타까이 그대 이름 불러도 알지 못하리 걸음마다 이별이 기다리고 이별 끝에 저 하늘도 놀이 지나니 이 세상에 저물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뭉게 구름이 하늘에 떠 있는 오후입니다 오늘도 꽃지의 일몰이 아름답겠군요! 행복한 추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