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 그 아름다운 기억 / (宵火)고은영
온동리 집집 마다 굴뚝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냄새들이
온 마을을 휘돌아 내리고
그 해 섣달 그믐에는 싸락눈이 내렸지요
새로 사온 빨강 모자 달린 나일론 외투에
새 바지, 그리고 까만색 새 운동화를 가슴에 안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믐 밤
밤은 왜 그렇게 길었던지
동네 어귀마다 싸락눈이 밤새 사락사락 내렸지요
가슴 저미는 기억의 들창으로
동트는 아침은 잎 떨 군 보리수 나뭇가지에서
참새들이 짹짹 노래하고
마당엔 밤새 소복이 싸락눈이 쌓이고
내 기억의 아름다운 창가에
환희로 당도하는 설날이 열리면
그리운 얼굴들이 나의 눈물에 피어납니다
세월의 저편으로 사랑을 놓고 떠나간
내 사랑하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세월이 유수 같이(流水) 흐르고
그 시절 내가 내 어머니의 나이보다
더 늙어버린 지금, 외롭게 서성대는
아, 건널 수 없는 나의 유폐된 고립
죽도록 그립다고 죽어도 그립다고
보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홀로 외로운 섬으로 남아
눈물 젖은 편지를 씁니다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를 모시고 바람 쐬드리러 나왔던 날
섣달 그믐,,,,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살지만,
두분은 언제나 변화없이 한마음으로 살아가십니다
남은 날들이 살아온 날보다는 분명히 짧다는 것을 알기에 소중한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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