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나는 슬픔을 잊었다 / 김금란

농돌이 2019. 5. 21. 20:37

그리하여 나는 슬픔을 잊었다 / 김금란

 

당신의 이름이 사라졌다

이른 봄꽃이 꽃망울을 피웠지만

서랍을 가득 채운 약봉지들만 당신을 기억할 뿐

무릉도원면 아랫골 길 163-12에는

당신의 이름으로 된 우편물 하나 더는 오지 않았다

 

사람을 잊는 것도 이름을 잊는 것도

계절을 보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한때 당신의 이름의 한 획이었던 활자들이

가끔 꽃샘추위처럼 내 머리속을 찌르고 지나갈 뿐

죽을 것처럼 오열했던 순간들은

땅에 닿은 힌 눈보다 빨리 사라졌다

 

나는 다시 울음보다 웃음이 많아졌고

틈만 나면 남해 여행 책자를 뒤적이고 있었다

세상에 남은 것은

그 누구의 슬픔도 그 누구의 이름도 아니었다

당신을 영 잊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은

더 이상 믿지 않기로 했다

 

흙을 밟고 걷는 것이 특별한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

보리가 누릇누릇 익어가던 풍경도 이제는 힘들어졌고,,,

 

공평하게 주어지는 일상의 시간에서,

좀 더 다르게는 아니지만, 찿아가고픈 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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