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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 함민복삶 2019. 10. 7. 21:15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 함민복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세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커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보이던 이삿집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 골목에서 짜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짜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짜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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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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