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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도 / 노향림
간월도에 와
간월암 너무 아득해서 그만두고
높은 돌계단의 해탈문에 이르러
누구나 한번쯤 옷깃 여민다는 그곳도 말고
나지막한 바위섬 아래 갯벌로 걸어내려가리.
하루에 두차례 햇볕 아래 펑퍼짐한 알몸 드러낸
석화 초만원의 나라,
갈고리와 파도가 싱싱한 엇박자로 울리는 세상,
등에 꼽추처럼 짊어진 대바구니 내려놓고
사람들 틈에 나도 퍼질러 앉아
만조도 깜박 잊고 석화를 캐리.
바닷물이 와 정강이와 허벅지를 서늘히 누르면
일몰에도 가라앉지 않고 뜬 간월암 절집의
깜박이는 둥근 등불 바라보며
시간 앞에 넋 놓고 앉아
시간 따위는 잊어도 좋으리.
화엄은 멀고 수평선에 박힌
석화만큼 이지러진 초승달 앞에
까고 있던 한 소쿠리 비린 목숨 내려놓고
바다 밖으로 해탈하듯 잦아드는
달빛 소리나 귀담아들으리.
- 노향림,『푸른 편지』(창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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