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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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지 노을에 서서삶 2021. 2. 23. 19:56
어느 날 / 선미숙 생각 없이 달력을 보다가 아득하니 마음이 떨어질 때 무엇을 하며 여기까지 왔을까 기억에 모두 담아두지 못한 날들을 더듬어 보며 다시 한 번 큰 숫자를 꼽아보고 아직도 설익어 텁텁한 부끄러운 내 삶의 열매를 봅니다. 살아가는 일 보다 살아있음으로 충분히 세상에 고마운 웃음 나눠야 하는데 그 쉬운 즐거움을 아낀 좁은 마음이 얼마나 못난 것인가 이제야 알았습니다. 비바람도, 눈보라도 그대로 소중한 것을! 한파가 밀려오면 노을 곱다 간만에 추워서 동태되는 즐거움을 만끽했던 날,,,! 물이 밀려와 차오르고,,, 노을은 지고,,,, 걷고 있는 모든 삶의 길이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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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 류시화삶 2020. 1. 23. 07:20
이마에 난 흉터를 묻자 넌 지붕에 올라갔다가 별에 부딪친 상처라고 했다 어떤 날은 내가 사다리를 타고 그 별로 올라가곤 했다 내가 시인의 사고방식으로 사랑을 한다고 넌 불평을 했다 희망 없는 날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난 다만 말하고 싶었다 어떤 날은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처럼 접을 수도 없었다 누가 그걸 옛 수첩에다 적어 놓은 걸까 그 지붕 위의 별들처럼 어떤 것이 그리울수록 그리운 만큼 거리를 갖고 그냥 바라봐야 한다는 걸 - 류시화, 「첫사랑」- 오늘처럼 꾸리꾸리한 저녁에는, 혹시 소주 한 병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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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돌아보는 길 위에서 / 이해인삶 2018. 12. 13. 21:26
한해를 돌아보는 길 위에서 / 이해인 마지막 잎새 한 장 달려 있는 창 밖의 겨울 나무를 바라보듯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 달력을 바라보는 제 마음엔 초조하고 불안한 그림자가 덮쳐옵니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은 뿌리를 내렸나요? 감사를 잊고 살진 않았나요? 한해를 돌아보는 길 위에서 저녁놀을 바라보는 겸허함으로 오늘을 더 깊이 눈감게 해주십시오 더 밝게 눈 뜨기 위해 지난 일요일 찿았던 꽃지의 일몰입니다 『 머무는 자는 집을 만들고, 떠나는 자는 길을 만든다 』 는 말을 되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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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년 모두 모두 수고하셨습니다삶 2017. 12. 31. 20:27
송년인사 / 오순화 그대 올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대 올해도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그대 올해도 사랑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대 올해도 내 눈물 받아 웃음꽃 피워주고 그대 올해도 밉다고 토라져도 하얀 미소로 달래주고 그대 올해도 성난 가슴 괜찮아 괜찮다고 안아주고 아플 때마다 그대의 따스한 손길은 마법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대의 품은 오늘도 내일도 세상에서 가장 넓고 편안한 집입니다 그대가 숨쉬는 세상 안에 내 심장이 뛰고 희망이 있습니다 그대 올해도 살아줘서 살아있음에 큰 행복 함께 합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 유안진 송년에 즈음하면 도리 없이 인생이 느껴질 뿐입니다 지나온 일년이 한생애나 같아지고 울고 웃던 모두가 인생! 한마디로 느낌표일 뿐입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자꾸 작아질 뿐입니다 눈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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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가지 않은 길 / 고은삶 2017. 12. 27. 20:13
아직 가지 않은 길 / 고은 이제 다 왔다고 말하지 말자 천리 만리 였건만 그동안 걸어온 길 보다 더 멀리 가야 할 길이 있다 행여 날 저물어 하룻밤 잠든 짐승으로 새우고 나면 더 멀리 가야할 길이 있다 그동안 친구였던 외로움일지라도 어찌 그것이 외로움뿐이었으랴 그것이야말로 세상이었고 아직 가지 않은 길 그것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모르는 세상이리라 바람이 분다 12월은 변화의 달이다 우리 모두는 행동하지 않지만 움직임을 모색한다 밤새 뒤척이다 세상에 나갔다 동행하는 신에게 기도를 하지,,, 함께 하소서,,,! 다시 집, 그리고, 아주 작은 책상,,,! 꿈을 꾼다 다르게 사는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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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쓴다 / 천양희삶 2017. 9. 22. 02:36
너에게 쓴다 / 천양희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 먼저 다 닳았다. 꽃진 자리에 잎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이 되었다. 마침내는 내 생生 풍화되었다. 어제 / 천양희 내가 좋아하는 여울을 나보다 더 좋아하는 왜가리에게 넘겨주고 내가 좋아하는 바람을 나보다 더 좋아하는 바람새에게 넘겨주고 나는 무엇인가 놓고 온 것이 있는 것만 같아 자꾸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너가 좋아하는 노을을 너보다 더 좋아하는 구름에게 넘겨주고 너가 좋아하는 들판을 너보다 더 좋아하는 바람에게 넘겨주고 너는 어디엔가 두고 온 것이 있는 것만 같아 자꾸 뒤를 돌아다본다 어디쯤에서 우린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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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끝에 닿는 사람/ 박남준삶 2016. 8. 9. 22:13
길 끝에 닿는 사람/ 박남준 다시 나는 먼 길을 떠난다 길은 길로 이어져서 산과 들 강, 저문 날이면 어느 곳엔들 닿지 않으랴, 젊은 꿈과 젊은 밤과 오랜 그리움이 혹여 있을지, 그곳엔들 문을 열면 밤은 더욱 자욱하고 신음소리 쓸쓸하지 않으랴만 더러는 따뜻했어, 눈발이 그치지 않듯이 내가 잊혀졌듯이, 이미 흘러온 사람, 지난 것들은 여기까지 밀려왔는지, 뒤돌아보면 절뚝거리던 발걸음만이 눈 속에 묻혀 흔적없고 문득, 나 어디에 있는가, 어쩌자고, 속절없이 누군들 길 떠나지 않으랴, 먼길을 떠난다 흐르는 것은 흐르는 것으로 이어져서 저 바람의 허공, 갈 곳없이 떠도는 것들도 언제인가, 닿으리라 비로소, 길 끝에 이르러 거친 숨 다하리라, 아득해지리라 어머니는 늘 그랬다 내 집이 최고라고,,, 무너져도 기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