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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에게 바치는 이력서 / 류시화삶 2014. 9. 29. 01:22
태양에게 바치는 이력서 / 류시화
1
나 태양에게 고백할 것이 있네
한때 나는 최고의 시인을 꿈꾸었으나
화살을 맞은 독수리 처럼
추락하였다
시인이 될 권리를 갖고 태어나
열 살부터 다락방에서 홀로 우주를 꿈꾸었으나
구름들이 몰려와 내 둥지를
감춰 버렸다
그리하여 나 삼류 시인처럼 거리를 헤매며
수년간 시를 잊고 살았다.
누군가 세상의 등록 장부에서
내 이름 석자를
지워 버렸다
2
나 태어나는 날
태양은 일식을 시작하고
꼬리가 여러개인 별똥별이 날아 와
점치는 여자의 눈에 박혀 버렸다
눈 먼 여자의 예언에 의할 것 같으면
내 삶을 지배하는 것은
어둠이었다
태양이여, 내 눈을 멀게 하렴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지 않도록
내 눈이 본 것과 보게 될 것들을 그리워 하지 않도록
태양이여, 내 눈에게 말하렴
눈 먼자의 지혜를
진정으로 볼 것을 보고 있는 자의 지혜를
3
눈 먼 여자가 나를 따라 왔다
눈 먼 늙은 여자가 바다위를 걸어
나를 따라 왔다
태양은 또 다시 일식을 준비 하고 있다바다가 보고싶다
차가운 바람을 온 몸으로 온통 마주하고싶다
혼자여도 좋다
다만 하얀 바다와 물거품과 비릿한 갯내음이면 된다
맑은 조약돌의 울림이 있다면 더욱 좋다
늦은 밤이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일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새 날을 또한 기다리며, 준비합니다
〔자기 보다 적어도 동등하거나, 더 나은 사람이 아니면, 차라리 홀로 길을 가라 : 법구경〕
내 마음속에 사랑을 알았고, 사랑이 있으니,,,,
깊은 꿈을 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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