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늘(박재삼)

농돌이 2013. 6. 29. 11:31

 

 

나무 그늘(박재삼)

 

당산나무 그늘에 와서

그동안 기계병으로 빚진 것을

갚을 수 있을까 몰라.

이 시원한 바람을 버리고

길을 잘못 든 나그네 되어

장돌뱅이처럼 떠돌아 다녔었고,

이 넉넉한 정을 외면하고

어디를 헤매다 이제사 왔는가.

그런 건 다 괜찮단다.

왔으면 그만이란다.

용서도 허락도 소용없는

태평스런 거기로 가서,

몸에 묻은 때를 가시고

세상을 물리쳐보면

뜨거운 뙤약볕 속

내가 온 길이 보인다.

아, 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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