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다 / 류근

농돌이 2023. 8. 25. 17:42

가을이 왔다 / 류근

 

가을이 왔다

뒤꿈치를 든 소녀처럼 왔다

 

하루는 내가 지붕 위에서

아직 붉게 달아오른 대못을 박고 있을 때

길 건너 은행나무에서 고요히 숨을 거두는

몇 잎의 발자국들을 보았다

사람들은 황급히 길에 오르고

아직 바람에 들지못한 열매들은

지구에 집중된 중력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우주의 가을이 지상에 다 모였으므로

내 흩어진 잔뼈들도 홀연 귀가를 생각했을까

문을 열고 저녁을 바라보면 갑자기 불안해져서

어느 등불 아래로든 호명되고 싶었다

이마가 붉어진 여자를 한번 바라보고

어떤 언어도 베풀지 않는 것은 가을이

이제 막 시작됐다는 뜻

안경을 벗고 정류장에서 조금 기다리는 일이

그런데로 스스로에게 납득이 된다는 뜻

나는 식탁에서 검은 옛날의 소설을 다 읽고

또 옛날의 사람을 생각하고

오늘의 불안과

미래로 가는 단념 같은 것을 생각한다

가을이 내게서 데려갈 것들을 생각한다

가을이 왔다 처음 담을 넘은 심장처럼

덜컹거리며 빠르게,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망설임으로

왔다

 

매일 같은 빛으로 보이던 들판이 바뀌고 있습니다 

가을 색채로 덮혀가는 풍경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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