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 김수영
-
풀 / 김수영삶 2015. 6. 28. 05:21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안면도 밧개 해수욕장) 황동규, 「시의 소리」 여기서 우리가 풀을 민중의 상징이고 바람, 특히 ‘비를 몰아오는 동풍’은 외세의 상징이라는 식의 의미를 부여해서는 곤란하다. 그런 의미를 붙이게 되면 비를 몰아오는 바람을 풀이 싫어할 리가 없다는 생물 생태학적인 반론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람보다 동작을 ‘빨리’, ‘먼저’ 한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