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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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골짜기에서 / 도종환산 2022. 2. 20. 19:39
겨울 골짜기에서 / 도종환 낮은 가지 끝에 내려도 아름답고 험한 산에 내려도 아름다운 새벽 눈처럼 내 사랑도 당신 위에 그렇게 내리고 싶습니다. 밤을 새워 당신의 문을 두드리며 내린 뒤 여기서 거기까지 걸어간 내 마음의 발자국 그 위에 찍어 당신 창 앞에 놓아두겠습니다. 당신을 향해 이렇게 가득가득 쌓이는 마음을 모르시면 당신의 추녀 끝에서 줄줄이 녹아 고드름이 되어 당신에게 보여주겠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바위처럼 돌아앉아 있으면 그래도 당신이 저녁 산처럼 돌아앉아 있으면 바람을 등에 지고 벌판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당신을 사랑 했었노라는 몇 줄기 눈발 같은 소리가 되어 하늘과 벌판 사이로 떠돌며 돌아가겠습니다 겨울 막바지 꽃샘추위가 한창입니다 이제 겨울이 가려나 봅니다 철학자 니체는 우상의 황혼이란 저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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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묻는다 / 천양희삶 2022. 2. 8. 22:15
그에게 묻는다 / 천양희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은 늘 같은데 하늘은 볼 때마다 다르다 하겠는지요 서울살이 삽십 년 동안 나는 늘 같은데 서울은 볼 때마다 다르다 하겠는지요 길에는 건널목이 있고 나무에는 마디가 있다지요? 산천어는 산속 맑은 계곡에 살고 눈먼 새는 죽을 때 한번 눈뜨고 죽는다지요? 동박새는 동백꽃에서만 살고 기린초는 척박한 곳에서만 산다지요? 귀한 진주는 보잘것없는 조개에서 나오고 아름다운 구슬은 거친 옥돌에서 나온다지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고 모든 문제는 답이 있다지요? 사는 것이 왠지 슬픈 생각이 든다고 하겠는지요 슬픔을 가질 수 있어 내가 기쁘다고 하겠는지요 삶은 늘 고수가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인정한다 오늘도 삶의 대칭점에 선 스승께서 가르쳐주신다 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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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속에 / 김용호삶 2022. 2. 4. 05:37
우리의 마음속에 / 김용호 초록의 꿈을 키우는 아름다운 산천에 바람이 지나 가야 할 곳이 있듯이 우리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사랑이 지나 갈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강으로 이여 지는 계곡에 부드러운 물이 지나 가야 할 곳이 있듯이 우리의 협소한 마음속에 부드러운 이해가 지나 갈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이런 저런 유혹과 갈등에 마음이 조금은 흔들려도 균열이 생겨서는 안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위해 자기를 다 태우는 희생의 촛불 하나 우리의 마음속에 밝혔으면 참 좋겠습니다 등대처럼,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 소망, 꺽이거나, 흔들리지 않는 다짐을 늘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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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 그 아름다운 기억 / (宵火)고은영삶 2022. 1. 31. 20:11
섣달 그믐, 그 아름다운 기억 / (宵火)고은영 온동리 집집 마다 굴뚝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냄새들이 온 마을을 휘돌아 내리고 그 해 섣달 그믐에는 싸락눈이 내렸지요 새로 사온 빨강 모자 달린 나일론 외투에 새 바지, 그리고 까만색 새 운동화를 가슴에 안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믐 밤 밤은 왜 그렇게 길었던지 동네 어귀마다 싸락눈이 밤새 사락사락 내렸지요 가슴 저미는 기억의 들창으로 동트는 아침은 잎 떨 군 보리수 나뭇가지에서 참새들이 짹짹 노래하고 마당엔 밤새 소복이 싸락눈이 쌓이고 내 기억의 아름다운 창가에 환희로 당도하는 설날이 열리면 그리운 얼굴들이 나의 눈물에 피어납니다 세월의 저편으로 사랑을 놓고 떠나간 내 사랑하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세월이 유수 같이(流水) 흐르고 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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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터지도록 / 곽승란산 2022. 1. 21. 22:03
가슴이 터지도록 / 곽승란 뜨거운 응어리 가슴에 뭉클하던 인연의 길 끄트머리에 어둠은 소리 없이 내렸지 서산마루 핏빛으로 뭉그러지는 노을처럼 내 눈에도 피눈물이 흘렀었다 어둠은 거리를 덮고 삭막한 바람 불어오고 마지막으로 들려오던 목소리 뻥 뚫린 가슴 부여안으며 사그락 사그락 바람 따라 마른 낙엽 밟았던 소리 이제 잊을만한 시간 흘렀건만 스산한 저녁거리 덩그러니 혼자 보는 노을 왠지 외롭고 쓸쓸해 한편의 영화처럼 스치는 무언가 울컥 쏟아지는 멍울 소리치고 싶다 아주 큰 소리로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 그 곳에 가서 막 소리치고 싶다. 멍먹한 가슴 뻥 뚫리도록. 만항재에 가고 싶은 날 입니다 볼떼기 시리도록 춥고,,,, 손끝이 아리도록 아픈 곳,,,, 그곳에 가고 싶은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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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민박집 / 이생진산 2022. 1. 6. 15:36
바닷가 민박집 / 이생진 바닷가 민박집 여기다 배낭을 내려놓고 라면 상자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커피 한잔 옆에 놨다 오른 쪽 창문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바다가 보이면 됐어’ 이건 거창하게도 내 인생 철학이다 철학이 없어도 되는데 80이 넘도록 철학도 없이 산다고 할까 봐 체면상 내건 현수막이다 ‘바다가 보이면 됐어’ 인사동에 모인 젊은 친구들이 낙원호프집에서 부르는 구호도 이거다 그런데 이 민박집에서는 진짜 바다가 보인다 그래서 나는 호프집보다 이 민박집이 좋다 바다는 누가 보든 말든 제 열정에 취해 여기까지 뛰어든다 그 모습이 나만 보고 달려오는 것 같아 반갑다 다시 돌아갈 때는 모든 이별을 한꺼번에 당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그 바다가 창 밖에 있으니 보호자 옆에 있는 것 같아 든든하다 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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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누워 / 박혜수삶 2022. 1. 4. 20:17
바다에 누워 / 박혜수 내 하나의 목숨으로 태어나 바다에 누워, 해 저문 노을을 바라본다 설익은 햇살이 따라오고 젖빛 젖은 파도는 눈물인들, 씻기워 간다 일만의 눈초리가 가라앉고 포물의 흘러 움직이는 속에 뭇별도 제각기 누워 잠잔다 마음은 시퍼렇게 흘러간다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가 될까 물살의 퍼져감은 만상을 안고 가듯 아물거린다 마음도, 바다에 누워 달을 보고, 달을 안고 목숨의 맥이 실려 간다 나는 무심히 바다에 누웠다 어쩌면 꽃처럼 흘러가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외로이 바다에 누워 이승의 끝이랴 싶다 바다 가고 싶다,,,! 젖은 마음, 누구에게 보이고 싶지 않으 날,,,, 파도소리가 천둥치는 바닷가에 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