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겨울풍경
-
눈 / 이태수산 2020. 8. 30. 19:23
눈 / 이태수 눈은 하늘이 내리는 게 아니라 침묵의 한가운데서 미끄러져 내리는 것 같다 스스로 그 희디흰 결을 따라 땅으로 내려온다 새들이 그 눈부신 살결에 이따금 희디흰 노랫소리를 끼얹는다 신기하게도 새들의 노래는 마치 침묵이 남은 소리들을 흔들어 펼치듯이 쉽게 빚어내는 운율 같다 침묵에 바치는 성스러운 기도 소리 같다 사람들이 몇몇 그 풍경 속에 들어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먼 데를 바라본다 그 시간의 갈라진 틈으로 불쑥 빠져나온 듯한 아이들이 몇몇 눈송이를 뭉처 서로에게 던져대고 있다 하지만 눈에 점령당한 한동안은 사람들의 말도 침묵의 눈으로 뒤덮이는 것 같아 아마도 눈은 눈에 보이는 침묵, 세상도 한동안 그 성스러운 가장자리가 되는 것만 같다 밖에 못나가고 있으려니 답답합니다 시원한 겨울 한라..
-
아름다운 길 / 도종환산 2020. 6. 15. 21:54
아름다운 길 / 도종환 너는 내게 아름다운 길로 가자 했다 너와 함께 간 그 길에 꽃이 피고 단풍 들고 길 옆으로 영롱한 음표들을 던지며 개울물이 흘렀지만 겨울이 되자 그 길도 걸음을 뗄 수 없는 빙판으로 변했다 너는 내게 끝없이 넒은 벌판을 보여달라 했다 네 손을 잡고 찾아간 들에는 온갖 풀들이 손을 흔들었고 우리 몸 구석구석은 푸른 물감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빗줄기가 몰아치자 몸을 피할 곳이 없었다 내 팔을 잡고 놓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넘어질 때 너도 따라 쓰러졌고 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세찬 바람 불어올 때마다 너도 그 바람에 꼼짝 못하고 시달려야 했다 밤새 눈이 내리고 날이 밝아도 눈보라 그치지 않는 아침 너와 함께 눈 쌓인 언덕을 오른다 빙판 없는 길이 어디 있겠는가 사랑하며 함께 꽃잎 같은 ..
-
1%의 행복 /이해인산 2019. 1. 22. 20:41
1%의 행복 /이해인 사람들이 자꾸 묻습니다. 행복 하냐고 ~ 낯선 모습으로, 낯선 곳에서 살고있는 제가 자꾸 걱정이 되나 봅니다. 저울에 "행복" 을 달면 ~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불행 49%" "행복 51%" 이면, '저울'이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행복의 조건" 엔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단 "1%" 만 더 가지면, 행복한 겁니다 ! 어느 상품명처럼 2%가 부족하면, 그건 엄청난 기울기입니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1%"가 빠져나가 ~ !!! '불행'하다 느낄 때가 있습니다. 더 많은 수치가 기울기 전에, 약간의 좋은 것으로 ~ 다시, 얼른 채워 넣어 ~ "행복의 무게" 를 무겁게 해 놓곤 합니다. 약간의 좋은 것 '1%" 우리 삶에서 ..
-
봄이 오는 한라산, 영실 산행(2)산 2016. 3. 12. 21:49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 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