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 시모음
-
가을비 / 이외수삶 2017. 8. 14. 22:04
봄날은 간다 / 이외수 부끄러워라 내가 쓰는 글들은 아직 썩어 가는 세상의 방부제가 되지 못하고 내가 흘린 눈물은 아직 고통받는 이들의 진통제가 되지 못하네 돌아보면 오십 평생 파지만 가득하고 아뿔사 또 한 해 어느 새 유채꽃 한 바지게 짊어지고 저기 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봄날이여 가을비 / 이외수 사랑하는 그대 이제 우리 다시 만나면 소중한 말은 하지 말고 그거 먼 허공이나 바라보다 헤어지기로 할까 귀신도 하나 울고 가는 저녁 어스름 마른 풀잎 위로 가을비가 내린다 안개중독자/이외수 사랑아 그대가 떠나고 세상의 모든 길들이 지워진다 나는 아직도 안개중독자로 공지천을 떠돌고 있다 흐리게 지워지는 풍경 너머 어디쯤 지난날 그대에게 엽서를 보내던 우체국이 매몰되어 있을까 길없는 허공에서 일어나 길없는 허공에..
-
이외수 시모음삶 2017. 7. 17. 18:56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 이외수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바람부는 날에는 바람부는 쪽으로 흔들리나니 꽃 피는 날이 있다면 어찌 꽃 지는 날이 없으랴 온 세상을 뒤집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밤에도 소망은 하늘로 가지를 뻗어 달빛을 건지더라 더러는 인생에도 겨울이 찾아와 일기장 갈피마다 눈이 내리고 참담한 사랑마저 소식이 두절되더라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침묵으로 세월의 깊은 강을 건너가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두고 / 이외수 살아간다는 것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 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 하루에 한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 나는 시린 무릎 감..
-
안개 중독자외삶 2016. 3. 9. 19:34
안개중독자 / 이외수 사랑아 그대가 떠나고 세상의 모든 길들이 지워진다 나는 아직도 안개중독자로 공지천을 떠돌고 있다 흐리게 지워지는 풍경 너머 어디쯤 지난 날 그대에게 엽서를 보내던 우체국이 매몰되어 있을까 길없는 허공에서 일어나 길없는 허공에서 스러지는 안개처럼 그토록 아파한 나날들도 손금 속에 각인되지 않은 채로 소멸한다 결국 춘천에서는 방황만이 진실한 사랑의 고백이다 회상수첩 / 이외수 그해 겨울에는 일기를 쓰지 않았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언제나 바람이 허파 속에서 부러진 날개를 푸득거리고 있었어 생손앓이 사랑 끝에 도시는 폐쇄되고 톱질 당한 다리 절름거리며 무채색 하늘을 건너가는 가로수들 거리에는 음악소리 저물어 가고 내 목숨 마른 풀잎 하나로 허공을 떠돌았지 기다리던 함박눈은 내리지 않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