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봉산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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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새벽 / 박노해산 2020. 5. 1. 21:43
노동의 새벽 /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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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을 지납니다삶 2020. 4. 3. 22:00
매화꽃이 보는 곳을 보라/이산하 나도 가끔은 매화처럼 살고 싶었다 매화꽃이 보는 곳을 보고 매화 향기 가는 곳을 가고 싶었다 다른 꽃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필 때 매화처럼 땅을 내려다보며 피고 싶었다 눈보라 속 잎보다 먼저 꽃 피고 싶었고 어둠 속 매화 향기에 취해, 나도 그 암향을 귀로 듣고 싶었다 매화나무처럼 열매 속에 독을 넣어 새들이 함부로 씨를 퍼뜨리지 못하거나 매서운 추위 없이 곧바로 새 가지에 열매 맺고 싶지도 않았다, 나도 가끔은 매화꽃처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땅의 생채기에 단청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매화꽃이 보는 곳을 보다 보면 매화 향기 가는 곳을 가다 보면 나는 이미 하늘을 올려다보며 허공의 바탕에 단청을 하고 있었다 좌우의 치우침이 아니라 아품이 있는 날, 4.3 이 땅에서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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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정호승산 2019. 4. 27. 11:28
여행 / 정호승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 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 유유히 나의 심장을 쪼아 먹을 때까지 쪼아 먹힌 나의 심장이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릴 때까지 돌아오지 마라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람의 마음의 설산뿐이다. 모처럼 햇볕이 좋은 날입니다 돈을 지불하지 않고 얻는 것은 더욱 소중한가 봅니다 싱그러운 바람, 하늘, 햇볕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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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 정호승산 2019. 4. 20. 06:13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 정호승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별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그대를 만나러 팽목항으로 가는 길에는 아직 길이 없고 그대를 만나러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는 아직 선로가 없어도 오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 푸른 바다의 길이 하늘의 길이 된 그날 세상의 모든 수평선이 사라지고 바다의 모든 물고기들이 통곡하고 세상의 모든 등대가 사라져도 나는 그대가 걸어가던 수평선의 아름다움이 되어 그대가 밝히던 등대의 밝은 불빛이 되어 오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 한 배를 타고 하늘로 가는 길이 멀지 않느냐 혹시 배는 고프지 않느냐 엄마는 신발도 버리고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아빠는 아픈 가슴에서 그리움의 면발을 뽑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을 만들어주었는데 친구들이랑 맛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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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산에 온 손님!산 2015. 4. 4. 21:16
용봉산에 남산제비꽃이 피었습니다 매년 기다리는 봄 손님입니다 어쩌다 지나치면 또 1년을 기다리는 손님!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것이다. 행복한 저녁되세요! -------------------- 백과사전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름 종소명(種小名) ‘chaerophylloides’는 ‘chaerophylla’ 종과 비슷하다는 뜻인데,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진 잎을 뜻하는 ‘cheirophylla’를 잘못 기재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한국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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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용봉의 봄을 기억하며!산 2014. 12. 20. 09:51
정호승 / 봄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여 감기와 몸살이 찿아왔습니다 설산에 가서 차가운 공기를 호흡하고 싶은 심정이나 자제합니다 지난 봄, 용봉산에서 맞이했던 님들을 찿아 봅니다 내 마음에도 빨리 봄이 오기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