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
나 그대에게 고운 향기가 되리라 /이해인산 2017. 10. 18. 21:31
나 그대에게 고운 향기가 되리라 /이해인 초승달이 노니는 호수로 사랑하는 이여! 함께 가자 찰랑이는 물결위에 사무쳤던 그리움 던져두고 꽃내음 번져오는 전원의 초록에 조그만 초가 짓고 호롱불 밝혀 사랑꽃을 피워보자구나 거기 고요히 평안의 날개를 펴고 동이 트는 아침 햇살타고 울어주는 방울새 노래 기쁨의 이슬로 내리는 소리를 듣자구나 사랑하는 이여! 일어나 함께 가자 착한 마음 한아름 가득 안고서 나 그대에게 황혼의 아름다운 만추의 날까지 빛나는 가을의 고운 향기가 되리라 (2016년 가을 피아골에서,,,!)
-
귀가 / 도종환산 2017. 9. 6. 18:21
귀가 / 도종환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모두들 인사말처럼 바쁘다고 하였고 헤어지기 위한 악수를 더 많이 하며 총총히 돌아서 갔다 그들은 모두 낯선 거리를 지치도록 헤매거나 볕 안 드는 사무실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을 하였다 부는 바람 소리와 기다리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지는 노을과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밤이 깊어서야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돌아와 돌아오기가 무섭게 지쳐 쓰러지곤 하였다 모두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의 몸에서 조금씩 사람의 냄새가 사라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터전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쓰지 못한 편지는 끝내 쓰지 못하고 말리라 오늘 하지 않고..
-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위에 내가 서 있다 / 이외수삶 2017. 7. 31. 13:55
BC 1세기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가 남긴 말이다 노인의 무성한 백발과 깊은 주름을 보고 그가 오랜 인생을 살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백발의 노인은 오랜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다만 오래 생존한 것인지 모른다 다만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산다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표류하는 삶이 아니라, 목표를 향하여 항해하는 삶일 것이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내적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제한된 시간 안에 내가 이루어야 하는 성장, 이것이 일생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위에 내가 서 있다 / 이외수 이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한밤중에 바람은 날개를 푸득거리며 몸부림치고 절망의 수풀들 무성하게 자라 오르는 망명지 아무리 아픈 진실도 아직은 꽃이 되지 않는다 내가 기다리는 해빙기는 어디쯤에 있을까 얼음 밑으로..
-
길 / 윤동주산 2017. 6. 4. 21:55
길 /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 김용택 시인의 사람들은 왜 모를까 중에서 --
-
봄날의 한라산 눈꽃을 즐기며(2)산 2017. 3. 14. 17:23
생명은 / 요시노 히로시 생명은 자기 자신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 듯하다. 꽃도 암술과 수술이 갖추어져 있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곤충이나 바람이 찾이와 암술과 수술을 중매한다. 생명은 그 안에 결핍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을 다른 존재로부터 채워 받는다. 세계는 아마도 다른 존재들과의 연결 그러나 서로가 결핍을 채운다고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지지도 읺고 그냥 흩어져 있는 것들끼리 무관심하게 있을 수 있는 관계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은 것들도 허용되는 사이 그렇듯 세계가 느슨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은 왜일까. 꽃이 피어 있다. 바로 가까이까지 곤충의 모습을 한 다른 존재가 빛을 두르고 날아와 있다. 나도 어느 때 누군가를 위한 곤충이었겠지. 당신도 어느 때 나를 위한 바람이었겠지. 2016년 한..
-
비망록 / 문정희산 2017. 2. 17. 21:44
비망록 / 문정희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힌 눈과 칼바람이 함께 했던 덕유산, 구름이 있고, 파아란 하늘이 있고, 부질없는 그리움이 있었다 옹색하지만, 떠나가는 겨울이 아쉽다 모든 것이 훌쩍 지나간 이 겨울이 시골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느낌이 든다 남는 것도 없으니, 모자람도 없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