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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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거처 / 김선우삶 2021. 9. 2. 21:23
사랑의 거처 / 김선우 말하지 마라.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이 나무도 생각이 있어 여기 이렇게 자라고 있을 것이다. ―「장자」 인간세편 살다보면 그렇다지 병마저 사랑해야 하는 때가 온다지 치료하기 어려운 슬픔을 가진 한 얼굴과 우연히 마주칠 때 긴 목의 걸인 여자― 나는 자유예요 당신이 얻고자 하는 많은 것들과 아랑곳없는 완전한 폐허예요 가만히 나를 응시하는 눈 나는 텅 빈 집이 된 듯했네 살다보면 그렇다네 내 혼이 다른 육체에 머물고 있는 느낌 그마저 사랑해야 하는 때가 온다네 오늘도 빛나는 날이다. GE의 잭 웰치 회장은 " 너 자신이 돼라 "는 말을 많이 했답니다 삶에 주인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여건 중에서 가장 최적화된 나로 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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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첫사랑 / 김선우산 2020. 12. 24. 22:28
낙화, 첫사랑 / 김선우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시집『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문학과지성사, 2007) 오늘 하루가 정말 편안하시길 기원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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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첫사랑 / 김선우삶 2018. 1. 16. 22:10
낙화, 첫사랑 / 김선우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2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함께 떠난 여행에서, 내가 여기에 있음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많은 생각이 있지만, 사랑으로만 기억하고자 합니다 저의 삶에 시간 내주셔서, 마주쳐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