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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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대하여 / 정일근삶 2017. 6. 12. 22:36
아름다움에 대하여 / 정일근 영원한 것은 아름답다고 믿은 적이 있었다 영원히 살기를 바랐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삶이 나에게 가르쳤다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아름다운 것은 순간이었다 언제나 지나가면 사라지는 헛것이었다 하늘 깊이 반짝이는 새벽별이나 붉게 타오르는 저녁놀 풀잎 끝에 매달린 맑은 이슬 같은 내가 진정 아름다워하는 것들은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오래 기다렸던 첫눈도 눈이 피우는 나무의 눈꽃들도 결국 녹아버리고 마는 흔적이었다 사람의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첫사랑 첫키스 같은 가슴 떨림도 흑백사진으로 남는 추억이었다 그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한 약속도 헛것이 되고 말았다 내가 영원히 사랑한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한 것은 헛것이다 백 년 동안 색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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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 김수영삶 2015. 6. 28. 05:21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안면도 밧개 해수욕장) 황동규, 「시의 소리」 여기서 우리가 풀을 민중의 상징이고 바람, 특히 ‘비를 몰아오는 동풍’은 외세의 상징이라는 식의 의미를 부여해서는 곤란하다. 그런 의미를 붙이게 되면 비를 몰아오는 바람을 풀이 싫어할 리가 없다는 생물 생태학적인 반론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람보다 동작을 ‘빨리’, ‘먼저’ 한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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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에게 바치는 이력서 / 류시화삶 2014. 9. 29. 01:22
태양에게 바치는 이력서 / 류시화 1 나 태양에게 고백할 것이 있네 한때 나는 최고의 시인을 꿈꾸었으나 화살을 맞은 독수리 처럼 추락하였다 시인이 될 권리를 갖고 태어나 열 살부터 다락방에서 홀로 우주를 꿈꾸었으나 구름들이 몰려와 내 둥지를 감춰 버렸다 그리하여 나 삼류 시인처럼 거리를 헤매며 수년간 시를 잊고 살았다. 누군가 세상의 등록 장부에서 내 이름 석자를 지워 버렸다 2 나 태어나는 날 태양은 일식을 시작하고 꼬리가 여러개인 별똥별이 날아 와 점치는 여자의 눈에 박혀 버렸다 눈 먼 여자의 예언에 의할 것 같으면 내 삶을 지배하는 것은 어둠이었다 태양이여, 내 눈을 멀게 하렴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지 않도록 내 눈이 본 것과 보게 될 것들을 그리워 하지 않도록 태양이여, 내 눈에게 말하렴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