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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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지나오다 / 김수영산 2021. 11. 4. 22:31
숲을 지나오다 / 김수영 참나무와 졸참나무의 숲입니다 나뭇진이 흐르던 자리 (상처 없는 영혼도 있을까요) 가을이 오면 그 나무의 단풍이 많겠지요 오솔진 숲으로 흐르는 여름 해의 눈부신 역광 발효한 빛의 향기가 헤매이게 합니다 보이지 않는 꿀에 취해 더러운 흙에서 나서 죽을 때까지 쓸쓸하여 허기지는 것들 가을까지라면 더욱 무겁겠지요 푸른 채 떨어진 나뭇잎과 굳어가는 나무 줄기 잘 구워진 깊은 우물 같은 마음의 맨 밑바닥에서 벗겨낸 한 두름의 그늘은 그 그늘이 된 자리에서 더 낮은 곳으로 쟁쟁히 울립니다 상처 없는 영혼이 있을까요 살면서 오래 아파함도 기쁨이겠지요 가을이 진정 아름다은 건 눈물 가득 고여오는 그대가 있기 때문이리 (이해인, 가을이 아름다운 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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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가고 싶다 / 안도현삶 2020. 12. 28. 18:01
그대에게 가고 싶다 / 안도현 해 뜨는 아침에는 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밤새 퍼부어대던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하늘도 맨 처음인 듯 열리는 날 나도 금방 헹구어낸 햇살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창가에 오랜만에 볕이 들거든 긴 밤 어둠 속에서 캄캄하게 띄워 보낸 내 그리움으로 여겨다오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그리움 하나로 무장무장 가슴이 타는 사람 아니냐 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 새날이 밝아오고 진정 내가 그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되어 우리라고 이름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봄이 올 때까지는 저 들에 쌓인 눈이 우리를 덮어줄 따뜻한 이불이라는 것도 나는 잊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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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편지 / 박세현산 2020. 11. 25. 22:33
겨울편지 / 박세현 첫 눈을 맞으며 세상의 나이를 잊으며 저벅저벅 당신에게 걸어가 기다림의 사립문을 밀고 싶습니다 겨울 밤 늦은 식사를 들고 있을 당신에게 모자를 벗고 정중히 인사하고 싶습니다. 우리들 해묵은 안부 사이에 때처럼 곱게 낀 감정의 성에를 당신의 잔기침 곁에 앉아 녹이고 싶습니다 부당하게 잊혀졌던 세월에 관해 그 세월의 안타까운 두께에 관해 당신의 속상한 침묵에 관해 이제 무엇이든 너그러운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첫눈을 맞으며 세상의 나이를 잊으며 저벅저벅 당신에게 걸어가 당신의 바람벽에 등불을 걸고 싶습니다 계절이 지나면서 아름답게 나이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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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 윤수천산 2020. 6. 2. 04:30
사랑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 윤수천 깊은 사랑은 깊은 강물처럼 소리를 내지 않는다.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침묵으로 성숙할 뿐 그리하여 향기를 지닐 뿐 누가 사랑을 섣불리 말하는가 함부로 들먹이고 내세우는가 아니다. 사랑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감추어지고 깊이 묻힌다. 사람과 사람 사이 비로소 그윽해지는 것 서로에게 그 무엇이 되어주는 것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가는 것 그리하여 향기를 지니는 것 사랑은 침묵으로 성숙할 뿐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잠들지 못하는 기억이 마음을 맴돌아 잠을 설쳤습니다 돌아보고, 곱씹어 보고,,, 긴 새벽이었습니다 구겨진 마음은 파도의 포말처럼 흘렸던 시간들,,, 삶은 때때로 기도속에 서 있지 않는 순간도 있습니다 시간도, 생각도 단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