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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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저녁 / 김정택삶 2023. 7. 16. 20:05
여름날 저녁 / 김정택 온종일 뜨거운 사연 가슴에 품은 해 고개를 조아리며 서산마루에 걸터앉아 시큰둥 바라본다. 동네 우물가 두레박은 아낙네들 바쁜 손놀림에 곤두박질치며 멱감느라 분주하면 시원한 강바람 긴 그림자를 몰고 오니 수초 위에 쉬어가는 노을 빛을 잃고 잠이드네. 잔잔한 강물 위에 달빛이 자맥질하여 파문을 일으키면 웅크린 물새들 힘차게 비상한다. 별빛은 바람과 같이 내 마음속에 서성이면 떠오르는 옛 생각 한 가닥 그리움이 여울가에 아롱거려 세월은 가만히 있고 나만 홀로 추억 찿아 달려가네. 지루한 장마에, 잠시 빼꼼히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잠시 걸었습니다 문명은 자연에 맞서 이뤄낸 성취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타고난 자질을 발휘한 결과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 -- 문병에는 언제나 인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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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여름을 사랑합니다./ 이채삶 2022. 7. 4. 06:55
당신의 여름을 사랑합니다./ 이채 겨울은 덥지 않아서 좋고 여름은 춥지 않아서 좋다는 넉넉한 당신의 마음은 뿌리 깊은 느티나무를 닮았습니다. 더위를 이기는 열매처럼 추위를 이기는 꽃씨처럼 꿋꿋한 당신의 모습은 곧고 정직한 소나무를 닮았습니다. 그런 당신의 그늘이 편해서 나는 지친 날개 펴고 당신 곁에 머물고 싶은 가슴이 작은 한 마리 여름새랍니다. 종일 당신의 나뭇가지에 앉아 기쁨의 목소리로 행복의 노래를 부르게 하는 당신은 어느 하늘의 선녀인가요? 나뭇잎 사이로 파아란 열매가 여름 햇살에 익어가고 있을 때 이 계절의 무더위도 자연의 축복이라며 감사히 견디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큰 산을 오르다보면, 힘들어서 포기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합니다 그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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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의 기도삶 2017. 7. 28. 21:47
집시의 기도 - 충정로 사랑방에서 한동안 기거했던 어느 노숙인의 시 둥지를 잃은 집시에게는 찾아오는 밤이 두렵다. 타인이 보는 석양의 아름다움도 집시에게는 두려움의 그림자일 뿐…… 한때는 천방지축으로 일에 미쳐 하루해가 아쉬웠는데 모든 것 잃어버리고 사랑이란 이름의 띠로 매였던 피붙이들은 이산의 파편이 되어 가슴 저미는 회한을 안긴다. 굶어죽어도 얻어먹는 한술 밥은 결코 사양하겠노라 이를 깨물던 그 오기도 일곱 끼니의 굶주림 앞에 무너지고 무료급식소 대열에 서서…… 행여 아는 이 조우할까 조바심하며 날짜 지난 신문지로 얼굴 숨기며 아려오는 가슴을 안고 숟가락 들고 목이 메는 아픔으로 한 끼니를 만난다. 그 많던 술친구도 그렇게도 갈 곳이 많았던 만남들도 인생을 강등당한 나에게 이제는 아무도 없다. 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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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덥습니다삶 2016. 5. 22. 11:41
여름 일기 1/이해인 여름엔 햇볕에 춤추는 하얀 빨래처럼 깨끗한 기쁨을 맛보고 싶다 영혼의 속까지 태울 듯한 태양 아래 나를 빨아 널고 싶다 여름엔 햇볕에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향기로운 매일을 가꾸며 향기로운 땀을 흘리고 싶다 땀방울마저도 노래가 될 수 있도록 뜨겁게 살고 싶다 여름엔 꼭 한 번 바다에 가고 싶다 바다에 가서 오랜 세월 파도에 시달려 온 섬 이야기를 듣고 싶다 침묵으로 엎디어 기도하는 그에게서 살아 가는 법을 배워 오고 싶다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이해인 손 시린 나모(裸木)의 가지 끝에 홀로 앉은 바람 같은 목숨의 빛깔 그대의 빈 하늘 위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차 오르는 빛 구름에 숨어서도 웃음 잃지 않는 누이처럼 부드러운 달빛이 된다 잎새 하나 남지 않은 나의 뜨락인 바람이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