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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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기형도산 2014. 2. 27. 23:03
안개/ 기형도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이 읍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군단(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 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 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