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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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 이해인삶 2023. 1. 11. 19:52
바닷가에서 / 이해인 오늘은 맨발로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한번은 하느님의 통곡으로 한번은 당신의 울음으로 들렸습니다 삶이 피곤하고 기댈 데가 없는 섬이라고 우리가 한 번씩 푸념할 적마다 쓸쓸함의 해초도 더 깊이 자라는 걸 보았습니다 밀물이 들어오며 하는 말 감당 못할 열정으로 삶을 끌어안아보십시오 썰물이 나가면서 하는 말 놓아버릴 욕심들은 미루지 말고 버리십시오 바다가 모래 위에 엎질러놓은 많은 말을 다 전할 순 없어도 마음에 출렁이는 푸른 그리움을 당신께 선물로 드릴께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슬픔이 없는 바닷가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로 춤추는 물새로 만나는 꿈을 꾸며 큰 바다를 번쩍 들고 왔습니다 희망이 넝쿨처럼 자라서 벽을 덮고, 집을 덮는 담쟁이처럼 힘이 되는 저녁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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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묻는다 / 천양희삶 2022. 2. 8. 22:15
그에게 묻는다 / 천양희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은 늘 같은데 하늘은 볼 때마다 다르다 하겠는지요 서울살이 삽십 년 동안 나는 늘 같은데 서울은 볼 때마다 다르다 하겠는지요 길에는 건널목이 있고 나무에는 마디가 있다지요? 산천어는 산속 맑은 계곡에 살고 눈먼 새는 죽을 때 한번 눈뜨고 죽는다지요? 동박새는 동백꽃에서만 살고 기린초는 척박한 곳에서만 산다지요? 귀한 진주는 보잘것없는 조개에서 나오고 아름다운 구슬은 거친 옥돌에서 나온다지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고 모든 문제는 답이 있다지요? 사는 것이 왠지 슬픈 생각이 든다고 하겠는지요 슬픔을 가질 수 있어 내가 기쁘다고 하겠는지요 삶은 늘 고수가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인정한다 오늘도 삶의 대칭점에 선 스승께서 가르쳐주신다 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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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속에 / 김용호삶 2022. 2. 4. 05:37
우리의 마음속에 / 김용호 초록의 꿈을 키우는 아름다운 산천에 바람이 지나 가야 할 곳이 있듯이 우리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사랑이 지나 갈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강으로 이여 지는 계곡에 부드러운 물이 지나 가야 할 곳이 있듯이 우리의 협소한 마음속에 부드러운 이해가 지나 갈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이런 저런 유혹과 갈등에 마음이 조금은 흔들려도 균열이 생겨서는 안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위해 자기를 다 태우는 희생의 촛불 하나 우리의 마음속에 밝혔으면 참 좋겠습니다 등대처럼,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 소망, 꺽이거나, 흔들리지 않는 다짐을 늘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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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묘지 / 폴 발레리삶 2021. 8. 13. 06:34
해변의 묘지 / 폴 발레리 비둘기들 거니는 저 조용한 지붕이, 소나무들 사이, 무덤들 사이에 꿈틀거리고, 올바름인 정오가 거기서 불꽃들로 바다를 구성한다, 늘 되풀이되는 바다를 ! 오, 신들의 고요에 오래 쏠린 시선은 한 가닥 명상 뒤의 고마운 보답 ! 날카로운 번갯불들이 얼마나 순수한 작업이 잗다란 물거품의 숱한 금강석을 간직하고 있으며, 또 그래서 얼마나 아늑한 평화가 잉태되는 것만 같은가 ! 하나의 해가 심연 위에 쉴 때는, 영구 원인의 두 가지 순수 작품, 시간은 반짝이고 꿈은 바로 앎이다. 단단한 보물, 조촐한 미네르바 신전, 고요의 더미, 눈에 띄는 푸짐한 저장, 우뚝 솟은 물, 불꽃 너울 쓰고도 그 많은 잠을 속에 간직한 눈이여, 오, 나의 침묵 ! 넋 속의 신전, 그러나 기왓장도 무수한 금..